[스포츠서울 | 정하은 기자]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하이브의 리스크 관리 능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의 전 대표 민희진으로 시작된 내분은 민희진의 퇴사에 이어 전례없던 뉴진스의 ‘소송 없는 탈 하이브’ 선언으로 사실상 하이브의 경영 불확실성 의문으로 번진 상황이다. 자산 5조원으로 대기업 입성을 목전에 둔 하이브가 여전히 미흡한 리스크 관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주가도 급락, 주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민희진과 어도어 경영권을 두고 진흙탕 공방을 이어갈 때도 11개의 레이블을 거느린 초대형 엔터사인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대표 개인을 상대로 ‘주술 경영’ 등을 내걸며 여론전을 펼쳐 비난을 샀다. 또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하이브가 그간 타사 아이돌들을 노골적으로 평가한 ‘음악산업리포트’라는 문건을 작성해 자사 임원들에게 배포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K팝 팬덤 사이에선 하이브 기업 자체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까지 조성된 상황이다.
위기의 연속 속에, 뉴진스가 지난달 28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29일부터 어도어 소속이 아니므로 앞으로 자유롭게 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이브가 최대주주인 어도어와 결별하기 위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어도어가 계약을 위반해 전속계약 효력이 정지됐으니 법원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필요도, 위약금을 낼 필요도 없다는게 뉴진스의 주장이다. 지난달 내용증명을 보냈던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가 자신들의 시정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6000억 원으로 예상되는 거액의 위약금 배상 의무도 없으며, 뉴진스의 상표권도 자신들이 갖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공은 다시 하이브에게 돌아왔다. 어도어는 2023년 매출액 1103억 원, 순이익 265억 원으로 하이브 국내 6개 레이블이 낸 매출액의 10%와 순이익의 11%를 차지했다. 데뷔한지 1년만에 이룬 성과다. 올해 상반기 하이브의 각종 내홍을 겪으면서도 호성적을 거둔 ‘캐시카우’ 뉴진스가 빠지게 되면 하이브 역시 중대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 뉴진스가 ‘자유의 몸’이 된다면 하이브는 금전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신인 그룹의 리스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꼬리표를 달게 되기 때문에 현재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 문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뉴진스가 던진 공, 어도어의 남은 쟁점 #계약해지 #상표권과 위약금 #템퍼링
우선 상표권 소송,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절차를 건너뛴 계약 해지 발표 및 상표권 권리 주장에 대해 어도어는 뉴진스와의 계약은 기존 서류대로 2029년 7월 31일까지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뉴진스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전속계약 유효’를 주장하는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역시 뉴진스가 어도어와의 법적 다툼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민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법적으로 따져봤을 때 계약 해지는 일방의 의사 통지가 도달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뉴진스 입장에선 전속계약이 해지됐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도어가 뉴진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전속계약 유지에 대한 소송이나 방송 금지 가처분, 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뉴진스의 계약 해지 선언에 따른 독자 활동을 막으려면 어도어가 소송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도어는 뉴진스가 내년 음반 발매 및 투어 논의에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판단, 귀책사유가 뉴진스에게 있다며 위약금을 요구하는 소송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다만 계약해지 사유가 어도어에 있다는 것을 입증된다면 뉴진스는 위약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또 뉴진스의 자유로운 활동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상표권 침해로까지 소송할 수도 있다. 상표권 침해가 고의적이었다고 판단되면 뉴진스는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그룹명은 계약서에 별다른 조항이 없는 한 소속사의 소유여서 뉴진스가 어도어를 나가면 사용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민희진이 어도어 퇴사 후 뉴진스 활동에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면 어도어가 ‘템퍼링(계약기간 중 제3자 접촉)’으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하이브가 민 전 대표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했던 만큼 그가 뉴진스의 계약 해지에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뉴진스는 기자회견에서 “(전속계약 해지와 관련해) 민 전 대표와 이야기하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어디까지가 템퍼링이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외부 세력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친분’만을 이유로 민 전 대표와 뉴진스의 템퍼링 의혹을 제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난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