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안중근 장군 거사를 오락영화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랬으면 아마 안 찍었을 겁니다.”

우민호 감독은 단호했다. 영화 ‘하얼빈’을 연출을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처럼 찍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공전의 히트를 한 자신의 전작 문법대로 오락적 요소를 충분히 가미할 수 있었지만, 이를 피했다.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독립군의 노고와 고초를 더 깊이 알게 됐죠. 20, 30대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희생과 헌신을 했잖아요. 저는 그걸 묵직하게 찍어야만 했어요.”

격한 반일(反日) 감정을 부추길 수도 있었다. ‘하얼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배제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안중근의 격앙된 표정이나 총을 맞은 이토를 비추지 않는다. 대신 하늘 위에서 내려보는 부감 샷을 썼다. 거사를 치른 뒤, 안중근이 하늘로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치는 메아리만 하늘에 아득히 울려 퍼진다.

“그건 분명히 제 의도였어요. 먼저 간 동지들 시점으로 찍고 싶었거든요. 현빈 배우에게도 그 순간을 관객들 시점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는 동지들이 들을 수 있게 ‘코레아 우라’를 외쳐달라 주문했죠.”

사실 우 감독은 ‘하얼빈’을 연출할 마음이 초반엔 적었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초기 대본을 줬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우 감독은 “알다시피 저는 한국 근현대사를 비판해 오던 감독”이라며 “감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서전을 읽고 끓어올라 다시 하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어느 감독이 안중근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설 수 있었겠어요. 잘해야 본전이니까요. 저도 영화를 찍으면서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어요. 10년, 100년이 걸려도 해야 한다는 안중근 말씀처럼 끝까지 밀어붙여서 했죠.”

‘하얼빈’에서 총을 당기는 시간은 채 1분이 안 된다. 영화는 마지막 여정까지 가는 지난한 과정을 담았다. 우 감독은 “광활한 대지와 자연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때로는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며 “연약해 보이는 한 인간이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게 숭고해 보였다. 그걸 화면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탄핵 정국 속 혼란한 현 시국과 오버랩된다. 개봉 2일만인 25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파란을 일으킨 것은 우 감독의 진심이 관객에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엄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온몸으로 막아낸 시민들이 생각나 울컥했어요. 저는 거기서 영웅을 봤어요. 이토가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자신을 쳐다보는 민초들의 눈빛이 섬뜩해서 주변에 많이 이야기했다고 해요. 그걸 ‘조선은 부패한 왕과 유생의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힘을 발휘한다’는 대사로 넣었죠.”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