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폭싹 속았수다’는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도 작품을 떠받친 힘이 됐다. 16회라는 긴 호흡이다. 에피소드-시대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펼친 연기에 그대로 몰입이 됐다.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 덕분이었다.
◇ 애순의 든든한 조력자 광례(염혜란 분)

광례(염혜란 분)는 남편과 사별했다. 홀로 자식을 키워야했다. 악착같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전복 하나 더 캐기위해 숨을 참았다. 결국 ‘숨병’이 났다. 광례는 죽음을 처연할 수 없었다. 애순의 뒤가 걱정됐다.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애순의 공부를 이어가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중학교도 가는 걸 보지도 못하고 29살에 요절한다.
광례는 이 작품의 뿌리와도 같다. 제주, 여성, 고난이라는 키워드를 품고 애순-금명으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를 완성한다. 염혜란은 광례 그 자체였다. 1회부터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애환이 짙은 서사를 표정과 몸짓으로 완성했다. 고난을 겪을 때마다 애순의 꿈에 나타나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말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 애순의 못다 이룬 꿈 이룬 금명(아이유 분)

금명은 애순의 페르소나다. 둘은 닮았다. 맏딸이다. 집안의 기둥이다. 성격도 닮았다.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속으로 삼키지만, 마지막엔 떨치고 일어난다. 시댁에서 금명을 해녀로 시키겠다고 하자 제사상을 엎어버린 것처럼, 금명도 부모를 하대하는 시댁과 맞붙는다. 결혼도 엎어버린다. 애순도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키웠어”라는 말은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라는 애순의 바람이자 당부다.
아이유는 이번 작품에서 1인 2역을 했다. 생긋생긋 웃는 애순과 달리 금명의 얼굴은 무척이나 건조하다. 아이유는 같은듯 다른 두 캐릭터를 톤에 맞게 완벽히 소화했다. 남자친구에게는 상냥하지만, 내 부모에게는 무뚝뚝한 캐릭터는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금명이 결혼하고 애순이 할머니가 될 4막 겨울에선 성숙한 금명이 어떤 얼굴로 부모를 대할지 궁금해진다.
◇ 관식과 대척점에 서 있는 상길(최대훈 분)

“학씨”
말끝마다 욕설을 내뱉는다. 자신보다 약하다 싶은 이들에게 이런 식이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마찬가지다. 상길(최대훈 분)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관식과 대척점에서 서있다. 집안의 온기를 더하는 관식과 달리 상길은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차갑게 만드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수록 열등감은 더해간다. 금명과 관식이 일출을 보러 배를 타고 나가는 게 부러워 딸 현숙(이수경 분)에게 제안해보지만, 차가운 냉대만 돌아온다. 최대훈은 주연 배우가 나이가 들면서 교체되는 가운데 홀로 청년시절과 노년 시절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 죽은 광례의 산 입이 되어주는 해녀 3인방 충수·양임·경자

광례가 죽은 뒤 그 입이 되어주는 건 해녀 3인방(충수, 양임, 경자)이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온 애순을 친조카처럼 아끼며 그녀의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애순을 괴롭히는 시할머니 막천(김용림 분)과 시어머니 계옥(오민애 분)에게 거침없는 돌직구를 던진다.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애순을 챙겼기에 훗날 가계 이름도 ‘세 이모네 횟집’으로 정한다.
남자가 귀했던 제주다. 4.3 사건으로 숱한 남자들이 없어지고, 여성들은 똘똘 뭉쳐야했다. 애순 곁에 이모들이 없었더라면, 힘든 시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길어올린 연대 서사도 이제 마지막 챕터를 앞두고 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