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만의 스펙터클 전개…한 공간서 백만가지 심리 전환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결혼하기 전 남자는 여자에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결혼하니 남편은 축구에 빠져 가정은 뒷전이다. 아내는 ‘사랑’하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집안일부터 바깥일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축구장에 간다던 남편들이 단체로 바람났던 것. 옆길로 샌 남편들이 차라리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했는데,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아이러니한 건 남편들의 안전 소식을 듣는 순간, 그들을 향했던 ‘증오’가 사라진다. 아내는 남편이 “보고 싶다”며 엉엉 운다. 부부의 연을 함부로 끊을 수 없게 하는 ‘애증’이 이들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아닐까.

연극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시골 마을 빌라 페로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범한 4명의 주부 이야기다. 남편들은 축구 경기를 보러 떠나고, 여자들끼리 하루를 즐기기 위해 왕언니 ‘소피아’의 집에 모였다. 이때 계속 불안해하던 막내 ‘지나’가 폭탄 발언을 한다. 남편들이 축구장으로 향하던 중 차량 결함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아내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만, 이내 남편들의 20만 유로 보험금을 타기 위해 비밀 작전을 펼친다.

◇ 상상초월 이야기 보따리가 웃음 폭탄으로 변신

작품은 코미디 연출의 대가 장진 감독의 스펙터클한 상상력으로 시작된다. 평범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 이틀 동안의 심리를 유쾌하게 표출한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살인을 계획한 아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는 아내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120분 공연 내내 폭소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애드리브 같은 배우들의 대사가 모두 대본이라는 것이 놀랍다. 소리 내 맘껏 웃다 보면 어는 순간 가슴 한편에 무언의 감동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신기하다. 장진만의 황당무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재기발랄한 발상이 웃음 포인트의 정점을 찍는다.

◇ ‘4인 4색’ 찰떡 캐스팅의 정수…웃음·감동 두 마리 토끼 잡아

초호화 배우들의 대거 출연도 눈길을 끈다. 2015년 초연에서도 화제 됐던 화려한 캐스트들이 더욱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캐릭터별 배우들의 등장만으로도 찰떡궁합이라고 느낄 만큼 캐스팅은 대성공이다.

이번 작전의 우두머리 ‘소피아’ 역은 박선옥·황정민·정영주가 연기한다. 가장 가정적이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넓은 마을의 맏언니는 남편의 외부 활동에 큰 관심 없다. 그러나 아내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 재치를 발휘하며 왕언니로서 동생들을 이끄는 듬직함을 보여준다.

공연 내내 이 인물의 눈빛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정도다. 잠든 남편에게 혼자 이별을 고한, 남편이 모르는 ‘나홀로’ 이혼한 ‘자스민’ 역으로 장영남·이엘·조연진이 열연 중이다. 항상 와인에 취해있어 좋게 말하면 애주가인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몸 개그까지 더해, 브라운관에서 봐온 내가 아는 그 고상한 배우가 맞나 싶은 활약을 펼친다.

고운 외모로 마을 미모 담당 ‘모니카’ 역에는 이연희·안소희·공승연이 출연한다. 토린예술학교 졸업작품에서 주인공 ‘무솔리니’로 열연했던 그가 남편을 대신해 다시 남자 연기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숨길 수 없는 수염 속 미모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토린공대 수석 졸업생이지만, 현재는 전업주부 ‘자스민’ 역은 이름만 들어도 밝은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김슬기·박지예가 나선다. 똑똑하고 통통 튀는 매력의 소유자지만,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온 우주의 복수심을 끌어모아 이번 작전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만다.

‘꽃의 비밀’은 평범한 부부간의 갈등을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 블랙코미디가 아니다. 혼돈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꽃됐다’라고 표현한다. 장면 속에는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우리 사회를 간접적으로 고발한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대학로를 웃음으로 흠뻑 적시는 ‘꽃의 비밀’은 오는 5월11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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