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덕션 20주년 공연, 5인 5색 ‘지킬/하이드’의 전율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아는 맛이 무섭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지금 이 순간’을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다면 감동을 넘어 경이로울 지경이다. 국내 최고 중의 최고인 뮤지컬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뮤지컬 입문자 추천곡을 넘어 회전문을 유발하는 장본인들이 각자의 색깔로 맛있게 노래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 결국 중독되고 만다.

올해 한국 프로덕션 20주년을 맞은 ‘지킬앤하이드’는 지난해 11월29일 개막 전부터 티켓팅을 위한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 겸비한 무대와 국보급 배우들의 대거 출연으로 연일 매진 행진 중이다.

‘지킬앤하이드’는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인간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을 직설적으로 보여줘 스토리 자체부터 흥미롭다. 로버트 한국 공연에서는 원작을 그대로 옮긴 레플리카가 아닌 논레플리카 프로덕션으로 제작,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암흑 속 한 줄기의 빛이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어떠한 장면에서는 끔찍하리만큼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두려움은 잠시뿐 스토리에 따라가면서 점점 무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간의 가면을 쓴 ‘하이드’의 괴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붉은 피가 검게 그을리듯 활활 타오른다. 이러한 감각은 뇌까지 퍼져 전두엽을 울린다.

◇ 현생의 ‘지킬/하이드’ 홍광호…전동석·김성철 이어 신성록·최재림 합류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작품을 이끄는 배우들의 힘이 크다. 뮤지컬 배우들이 꿈의 무대로 꼽지만, 최정상이 아니라면 무대에 감히 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만큼 두 인격을 동시에 소화하기 힘든 대작이다.

이번 10번째 시즌 ‘지킬앤하이드’는 장기간 공연인 만큼 ‘지킬/하이드’ 역과 ‘루시’ 역, ‘엠마’ 역을 두 파트로 나눠 배우들을 구성했다.

특히 지난해 11월29일 개막부터 ‘지킬/하이드’ 역은 현실판 ‘지킬/하이드’로 정평 나 있는 홍광호가 앞장서 이끌고 있다. 3시즌 연속 무대에 오른 전동석은 특유의 감미로운 보이스로 유혹하고는 연쇄살인마로 급변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혜성같이 등장해 배역을 따낸 김성철은 특유의 눈빛과 입꼬리로 두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해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현재(3월16일 기준) 새로운 ‘지킬/하이드’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28일 신성록과 3월1일 최재림이 전동석과 김성철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믿고 보는 배우’ 홍광호는 지난달 18일 ‘지킬앤하이드’ 개인 300회 무대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선과 악을 넘나드는 괴물 포스로 피켓팅에 기름을 붓고 있다. 작품의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땐 관객들이 두 손 모으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듣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베테랑 신성록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그만이 표출할 수 있는 미친 감정 표출로 전율을 일으킨다.

◇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늑대인간’의 섬뜩한 목소리

‘지킬앤하이드’ 공연 중 관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 ‘지킬’이 그의 내면에 잠재된 사악한 ‘하이드’를 끄집어내기 직전 부르는 넘버 ‘지금 이 순간’이 울려 퍼질 때일 것이다. 인간 대 인간이 허락하지 않아, 감히 신에게 도전하겠다며 선전포고를 외친다.

5명의 ‘지킬/하이드’가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은 모두 다른 느낌이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배우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하다. 뮤지컬 좀 봤다하는 관객이라면 5인 5색의 음색을 좇아 회전문을 돈다. 그만큼 배우들은 각자의 경험과 매력 포인트를 살려 ‘지금 이 순간’을 통해 매력을 발산한다.

홍광호의 ‘지금 이 순간’은 파워풀한 사랑 노래로 다가온다. 그의 노래에 익숙해서인지 험한 여정을 결심한 ‘지킬’의 주제곡이 결혼식 축가로 불린다. 홍광호를 비추는 조명이 마치 환희에 찬 후광처럼 느껴진다.

반면, 이번 시즌에 새롭게 합류한 최재림은 새로운 ‘지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재림의 ‘지킬’은 내면의 악을 깨우기에 앞서 신에게 승전고를 예고한다.

두 배우 모두 선하고 자상한 ‘지킬’에서 강력한 악의 기운을 가진 ‘하이드’로 변모할 때 숨겨왔던 사악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들이 각각 표현하는 ‘하이드’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홍광호의 ‘하이드’는 악마, 최재림의 ‘하이드’는 짐승 같다.

홍광호는 상냥하지만 소심한 ‘헨리(지킬)’였지만, ‘하이드’로 변하고 나면 악마로 돌변해, 여기에서 표출되는 두 인격의 양면성이 뚜렷하게 도드라진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진취적인 박사 ‘지킬’을 표현하는 최재림은 악을 품은 ‘하이드’의 가운을 입으면 늑대인간을 연상케 한다. 운동선수를 떠올리게 하는 키 188㎝·몸무게 87㎏의 거포로서 어두운 밤 숲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한 마리의 늑대 같다. 공포와 증오가 차오른 차가운 밤하늘의 달빛마저 서늘한 기운으로 뒤덮는다.

이처럼 홍광호·신성록·최재림이 말아주는 각양각색의 ‘지킬앤하이드’는 관객들의 호기심에 화력을 더하고 있다. 이들의 무대로 ‘비싼 티켓값 필요 없어. 티켓만 다오’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초호화 라인업과 함께 20주년 공연으로 돌아온 ‘지킬앤하이드’는 오는 5월18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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