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여정 마침표’ 그랜드 피날레
8월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3인3색 매력’ 박효신·카이·전동석
서정적 멜로디·감미로운 목소리, 천상으로의 초대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 ‘팬텀’을 한 번쯤 관람 경험이 있다면 작품에 대해 뮤지컬, 발레, 오페라, 클래식이 조화롭게 결합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대답이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작품의 형태는 사실이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단순하게 소개하기엔 아깝고 아쉽다. 그래서 종합예술의 귀한 걸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10년의 역사를 지닌 ‘팬텀’이 4년 만에 돌아왔다. 초대형 캐스팅 공개로 개막 전부터 관객들의 환심을 샀다. 이미 피켓팅이 예고된 상황,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는 이번 시즌을 ‘그랜드 피날레’라고 깜짝 발표해 티켓팅 경쟁에 불을 지피는 것도 모자라 기름을 부었다.
‘그랜드 피날레’는 말 그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의미다. 이번 무대가 ‘팬텀’의 마지막 여정은 맞지만, 작품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처럼 재정비 후 새로워진 ‘팬텀’으로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이미 작업이 들어간 상황이지만, 관객들에게 보다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싶은 기획·제작자들의 불타는 의지로 인해 컴백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팬텀’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보다 늦게 탄생했다. 두 작품 모두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지만, 스토리의 시작점이 달라 서로 다른 서사를 그린다.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를 휘어잡은 터. 대신 ‘팬텀’은 전 세계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중 한국 프로덕션이 가장 돋보인다. 모리 예스톤 작사·작곡가는 한국 공연만의 넘버를 5곡이나 새롭게 썼다. 이번 시즌에도 ‘서곡-내 비극적인 이야기’를 새롭게 공개했으며 ‘다 내꺼야’, ‘그 어디에’, ‘내 비극적인 이야기’를 리프라이즈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본 수정은 물론 발레의 비중을 넓혀 다른 뮤지컬 작품과 차별화했다. 또한 ‘팬텀’의 배경을 중심으로 원래 ‘에릭’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연출 및 각색을 맡은 로버트 요한슨은 “한국 프로덕션은 특별하다. 원작자들에 의해 그들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공연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 10년의 역사를 담은 우리만의 추억
‘팬텀’의 이야기는 정교한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크리스틴 다에’가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에 입성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천사’로 칭한 ‘팬텀’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극은 절정으로 향해 간다. ‘팬텀’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지만, 그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심장의 소리가 ‘크리스틴’에게 닿아 이루진 못했지만, 결국 진실한 사랑을 남긴다.
이번 무대에는 10년간의 찬란한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그동안의 추억과 다음을 기약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가장 먼저 ‘팬텀(에릭)’ 역의 배우들이 눈에 띈다. 2016년 재연 이후 9년 만에 박효신이 돌아왔다. 한 시즌을 제외하고 모든 무대에 올랐던 카이도 합류했다. 전동석은 이번 공연을 포함해 개인 3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화려했던 무대는 다소 단조로워졌다. 하지만 제작사가 EMK다. 모든 작품의 무대에 진심인 EMK는 10년 전 모습처럼 군더더기를 뺀 대신 수수께끼처럼 곳곳에 보물들을 숨겼다. 여기에 화력, 드라이아이스 등 특수효과까지 더해 몰입감을 높인다. ‘팬텀’ 좀 봤다 하는 관객이라면 이 퍼즐을 맞추는 것도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거의 스턴트맨급 ‘팬텀’의 액션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극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린 건 무대뿐만이 아니다. 인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힘을 실었다. ‘팬텀’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남자 ‘미저리’ 같은 집요한 사랑(집착)이 대비되는 상황에서조차 연민을 느낀다.
이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크리스틴’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팬텀’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제라드 카리에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기 직전 털어놓는다. 어쩌면 사는 동안 그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되려 했던 건 진심이 아닌, 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는 아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성애는 노래(목소리)로, 모성애는 발레(춤)로 표현한 것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팬텀’이 최대한 기억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팬텀’에서 넘버를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오페라극장에 와있는 듯 뮤지컬-오페라 세상을 넘나드는 환상에 접어든다. 심리적으로 혼란이 오더라도 어느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맑고 자유로운 영혼을 발견한다. 상처와 아픔도 있지만, 사랑의 기쁨도 깨닫는다. 배우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섬세한 서사는 ‘팬텀’이 10년간 흥행 신화를 이끌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다.
사랑은 운명에서 시작된다. 이 끌림이 무엇이든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것. ‘팬텀’은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외모, 지위, 환경 등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외친다. 그렇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을 지켜야 한다. ‘팬텀’은 인간의 초점에서 초월적 사랑으로 빨아들인다.
한편 10년 역사의 종착지로 달려가고 있는 ‘팬텀’은 8월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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