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일’ 앞으로 관람 기회
사회 속 공감 불러 일으키는 감동…눈물샘 자극
드라마에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연극 ‘2시 22분’과 ‘렛미인’에 대해 말들이 많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무섭다’이다. 현재 공연 중인 ‘2시 22분’과 ‘렛미인’은 무더위를 식혀줄 대표 공포물로 꼽힌다.
그런데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 관객들이 두 작품의 공연장 찾기를 꺼리고 있다. ‘호러(horror)’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다. 관람도 전에 나란히 베일에 가려진 채 묻히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2시 22분’과 ‘렛미인’ 공연장에는 일반 관객보다 연극계 주요 인사부터 뮤지컬 배우들까지 공연계 종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극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의 집합체’라고 대변한다.
그렇다면 두 작품을 굳이 ‘공포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입소문’으로 이미지를 굳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술의 깊이로 따진다면, 대중성에서는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인들조차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작품이기에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만큼 드러난 이미지와 다른 극한의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2시 22분’과 ‘렛미인’은 과연 ‘공포’ 유발을 위한 데에서 멈추는 것일까? 아니다. 두 작품 모두 가장 기본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2시 22분’은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을, ‘렛미인’은 이를 비롯해 ‘학교’ ‘마을’ 등 ‘가족’ ‘친구’ ‘이웃’ 등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물론 스토리는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두 작품 관람 후 앞선 생각은 바뀐다. ‘공포’는 사라지고 동정 아닌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주변을 되돌아보게 한다.
결말을 직접 지켜봐야만, 두 작품이 전달하고 싶은 진정한 메시지를 가슴에 품게 된다. 그래서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두 작품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일정이 단 11일 남았으니, 궁금하다면 또 대작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서두르는 것을 추천한다.

◇ 의문의 존재는 무엇을 원하는가, 연극 ‘2시 22분’
영국 런던의 한 평범한 가정집의 새벽 2시 22분. 매일 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의문의 침입자가 찾아온다. 뚜벅뚜벅 복도를 가로지르는 구두 소리의 주인공은 집주인 ‘제니’의 인기척에 바로 사라진다.
의문의 정체는 왜 이 집을 찾아왔는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가?
완전히 다른 성격인 4명의 인물이 미스터리한 사건 현장을 파헤친다. 둘은 부부이고, 또 한 편은 커플이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사랑일까, 질투일까, 유혹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존재일까.
의문투성이인 이들은 문제의 ‘2시 22분’을 기다리는 동안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제니’의 남편 ‘샘’은 과학적 근거로 초현실주의를 부정한다. 사흘 동안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제니’는 광신도처럼 해당 사건에 집착한다. 나머지 두 사람은 관심이 있는 둥 마는 둥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다. 가끔 ‘로렌’은 직업정신이 투철해 정신의학을 논하지만, 술 외에는 그리 관심 없어 보인다. 반면, ‘샘’은 이 상황을 어릴 적 ‘극기 훈련’처럼 즐기는 듯하다.
모든 소리 하나하나가 예민하다. 시곗바늘 소리조차 소름 돋는다. 아니, 거슬린다. 자명종인지, 메트로놈인지 의문의 발소리를 닮아 소름 끼친다. 여우의 울음은 비명과도 같다. 그(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하듯 모든 것이 공포의 대상이다. 귀여움 곰 인형이 무서운 건 처음이다.
도마뱀의 뇌는 보호본능을 최우선시하는 원초적인 본능을 발휘한다. 평소 시원하다고 느꼈던 공연장에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는 감각도 이러한 요소들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그만. ‘2시 22분’은 ‘스포일러 금지’를 강조한다. 관객이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 각기 다른 관전 포인트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수께끼 같지만, 맞다.
단, 공연장 로비에 마련된 ‘주의사항’과 같이 “본 공연은 장르 특성 및 연출상의 의도에 따라 다수의 음향효과로 인해 놀라는 장면이 일부 있으니, 임산부 및 심약자는 관람 시 유의”해야 한다.
관객들의 의문점 중 하나가 왜 작품명이 ‘2시 22분’이냐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새벽 ‘2시 22분’은 혼령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작품의 배경은 ‘런던’이다.
암전과 동시에 들려오는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모를 인물 간의 대화들이 코미디극인지 잠시 착각하게도 한다. 이들의 대화를 잘 들으면서 상상하는 것이 킬 포인트 중 하나.
한편 ‘제니’ 역 아이비·박지연, ‘샘’ 역 최영준·김지철, ‘로렌’ 역 방진의·임강희, ‘벤’ 역 차용학·양승리 등 실력파 배우들이 펼치는 기묘한 이야기 ‘2시 22분’은 오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 ‘강약약강’ 사회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 연극 ‘렛미인’
‘렛미인’은 어쩌면 단어 자체의 ‘미인’ 그대로 놓아두면 된다. 누구나 바라는 ‘사랑스러운 존재’를 꿈꾸는 자들을 대변한다.
영원한 삶 ‘불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나 혼자만 살아간다는 외로움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여자도, 남자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소녀의 형체로 수백 년을 살아온 ‘일라이’가 평범한 소년 ‘오스카’를 만나면서 또 한 번 인간의 삶 속에 파고든다.
‘오스카’는 한 부모 가정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와 살고 있다. 그를 괴롭히는 학교폭력의 주범들에게 “돼지야”라고 불리지만, 실체는 왜소하고 깡마른 MBTI 극 ‘I’ 성향의 소년이다.
하지만 오스카도 인간인지라,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이 있다. 언젠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같이 자작나무 숲에 숨어들어 나름대로 저격 훈련을 한다.
평소 이를 지켜봐 왔던 ‘일라이’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어딘가 서늘한 기운을 감싼 창백한 소녀 ‘일라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 아니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
차갑게 내려앉은 숲에서 이들은 우정을 넘어 사랑을 나눈다. 어쩌면 이들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껴 서로에게 끌렸을지 모른다. 불멸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점점 잃어가는 ‘일라이’와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오스카’는 초현실적인 벽을 깨부수고 인류애를 나눈다.
눈부시게 하얗던 눈길은 차갑고 붉은 핏자국으로 얼룩진다. 자작나무에 분풀이하며 복수를 노리는 ‘오스카’ 옆에는 ‘일라이’ 말고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이 센 존재 탓에 선뜻 ‘오스카’에게 손을 내밀 수 없다. 결국 ‘일라이’가 나서 ‘오스카’를 구한다.
심리학상 상처가 있는 사람은 조그마한 일에도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피해의식 때문이다. 대부분 이를 자책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남 탓을 한다. 일반적이다. 그래서 ‘강약약강’이 존재한다. 작품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스스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물음표를 던진다.
불멸의 소녀 ‘일라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상황을 외면하기만 하는 세상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할 ‘슈퍼맨’과 같은 인물이다. 어릴 적 ‘히어로(Hero)’인 셈이다.
동시의 사회에서 외면받는 이들의 외로움을 토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도움의 손길을 간과하는 이기적인 이 시대에 직설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다. 이는 ‘오스카’ 역시 경고한다.
작품은 인물 간의 심리를 몸으로 표현한다. 마치 무용극을 보는 듯한 섬세한 안무를 통해 상황을 묘사한다. 때론 에로티시즘, 폭력성을 보인다. 하지만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는 총체적 미학으로 풀이한다. 다소 어렵게 다가갈 수 있지만, 손끝 하나에서 보여주는 섬세함으로 인해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작품의 배경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자작나무를 뽑아 무대 위에 심은 것도 심리적 요소를 더욱 파고드는 장치다.
한편 ‘일라이’ 역 권슬아·백승연, ‘오스카’ 역 안승균·천우진, ‘하칸’ 역 조정근·지현준 등이 펼치는 한여름의 잔혹 동화 ‘렛미인’은 오는 16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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