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배우 김유정이 공들여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대체로 선함과 따뜻함의 결로 기억된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싱그러운 청춘의 설렘을 보여줬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과 작은 호흡 하나에도 마음을 보듬고 싶은 순정이 담겨 있었다. ‘홍천기’에서는 전혀 다른 결이 드러났다. 강단 있는 화공의 내면을 치밀하게 구축하며, 책임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쌓아 올렸다.
그런 김유정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 들었다. 악역 도전은 ‘파격’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모자랐다.
김유정이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에서 연기한 백아진은 눈부신 외모와 재능을 기반으로 정상만을 바라보는 신예 배우다. 밝고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타인의 감정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관계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이고, 사람은 변수다. 그는 공감 능력이 희미한 상태에서 목표만 향해 질주하는 인물이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김유정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캐릭터라서 오히려 끌렸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감정의 결이 굉장히 독특하고 극단적이거든요. 그런 고민 자체가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만 소비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인물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계속 질문하게 하는 캐릭터라서요. 시청자분들도 미워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보셨으면 했어요. ”
촬영 과정에서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억누르는 방식으로 연기했다. 김유정은 말의 속도, 눈의 각도, 몸의 움직임을 철저히 제한하며 인물의 중심을 잡았다.
“성희(김이경)에게 공세를 퍼붓는 장면이나 아버지와 충돌하는 장면은 에너지가 굉장히 세요. 그런 순간에는 연기자로서의 쾌감도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동시에 계속 이 인물의 감정선에 머무르다 보니 스트레스도 있었죠. 감정의 극단에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원작 팬들이 남긴 “백아진 같다”는 반응은 그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줬다. 실제로 티빙에 따르면 작품은 3주 연속 주말 신규구독기여 1위를 기록했다. 해외 반응도 두드러졌다. 미국 비키(Viki) 3주 연속 1위, 일본 디즈니+ 최고 순위 1위, MENA 지역 스타즈플레이 최고 2위 등 아시아와 중동 전반에서 존재감을 확장했다.
“티저가 공개됐을 때 반응이 좋을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공개 후에는 더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팬들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었죠. 특히 원작 팬분들이 ‘잘 보고 있다’고 말해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은 배경에는 배우들의 호흡도 있었다. 극 안에서의 긴장감과 거리감은 치열했지만, 촬영장 밖에서는 서로를 편하게 대하는 관계가 이어졌다. 현장의 공기가 작품의 완성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셈이다.
워낙 가까운 사이로 지낸 탓에 김유정과 김도훈은 뜻밖의 열애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두 사람이 베트남 나트랑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올라오며 오해가 커졌다.
“‘친애하는 X’ 팀이 함께 떠난 단체 여행이었어요. 저희끼리는 열애설을 계기로 작품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어요. 제 휴대전화에 저희 둘만의 사진이 아니라 감독님이나 다른 분들 사진도 많아요.(웃음)”
아역으로 데뷔했던 김유정은 어느새 20대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배우로 성장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쌓아온 시간들이 ‘친애하는 X’를 통해 다시 조명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향한 기대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앞으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에서, 제가 맡은 인물이 잘 살아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요. 급하게 보이지 않게, 하지만 저 나름대로 꾸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khd998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