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이해영 감독

[스포츠서울 남혜연기자]“차기작이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독전’의 이해영(45) 감독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는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2018년 한국영화 최단 기록을 수립하며 극장가의 새로운 흥행 강자로 떠올랐다. 영화는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 배우 조진웅, 류준열, 차승원부터 고(故) 김주혁까지 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알찬 그림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최근의 극장가는 할리우드 대작들이 대부분 선점하며 좀처럼 한국영화들이 힘을 내지 못했던 상황. 가뭄의 단비같이 등장한 ‘독전’은 흥행과 작품성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 등이 호평을 받으며 모두가 즐거운 영화가 됐다. 또한 “‘독전’은 이해영 감독이 만들었다는 게 반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또 한번 섬세한 연출력과 함께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뿐 아니라 범죄 액션물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다재다능함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해영 감독은 이같은 칭찬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좋다. 많은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이 함께 고생하며 만들었던 작품이라 더 뜻깊다”며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출연 배우들이 많다. 배우들이 믿고가는 캐릭터들을 만들어주셨다”며 모든 공을 돌렸다.

그동안의 작품에서 유쾌하고, 말랑말랑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통해 친근하게 소통했던 이 감독에게 이번 ‘독전’은 ‘감독 인생의 제2막’이라고 할 정도로 새롭고 더 화려해진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 꾼이자 섬세한 연출력으로 꽉 찬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해영 감독을 만났다.

-이해영 감독의 ‘독전’.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은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그 이해영 맞아?’라고 할 정도로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시작하기 전 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독전’을 하기 전에 연출작 세 편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작가로 데뷔하고선, 세 편의 영화를 연출하기까지 하나의 관성으로 계속 쉼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연출을 하고 나니 하나의 틀이 생긴게 아닐까? 나에게 스스로 ‘다른 진영으로 나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제야 말하자면(웃음), 조금 더 명확하게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독전’이라는 작품을 제안 받았다. 그렇다고 그 전에 다른 장르영화 시나리오를 제안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가슴으로 와 닿았던 것’ 그리고 ‘잘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별로 없어서 다른 작품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독전’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크게 끌렸던 점이 무엇이었나.

정서경 작가가 쓴 시나리오는 캐릭터들의 감정의 결이나 정서감이 굉장히 잘 살아있었다. 작가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 각본을 맡았다. 탄탄한 각본을 바탕으로 한 웰메이드 범죄극이 탄생했다. 아무튼, 이런류의 범죄 장르라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성적인 판단이 섰다. 이보다 더 가슴으로 끌렸던 것은 캐릭터들의 정서와 감정이 잘 살아있다는 점이다. 장르영화인 가운데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갖고 더 풍부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지와 기대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독전’의 또 다른 수식어는 ‘배우들의 화려한 라인업’이다. 이러한 점이 감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화려한 배우들 때문에 부담이 된다기보다는 이런 장르에 스스로 믿고가는 구석들을 준, 믿음가는 배우들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영화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 캐릭터다. 각자 강렬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함께 이끌어준 부분에서는 충분히 만족하는 영화가 ‘독전’이다.

-극중 실체없는 조직을 잡기 위해 나선 형사 원호(조진웅 분)와 어느순간 협업하게 된 조직에게 버림받은 연락책 락(류준열 분)의 케미스트리가 치밀하다. 냉철한 이성을 표현해 내다 한 인간의 복잡한 면까지 다양한 면을 그려낸다. 특히 이중 ‘락’ 역을 류준열을 염두해 두고 캐스팅 했는지가 궁금하다.

보통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을 대비해서 쓰지 않는다. 그냥 썼고, 어느순간 (류)준열이를 생각하면서 쓰게 되더라. 류준열을 보며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게 하는 점이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는 캐릭터라고 해야할까? 충분히 그 몫을 잘 해준 것 같다.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뿜어내는 스펙트럼은 상당히 깊고 넓다. 조진웅과 류준열의 협업과 맞대결 등은 두 배우가 만들어낸 최적화된 그림인 것 같다.

이해

독전 100만
영화 ‘독전’이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이해영 감독(왼쪽)과 출연 배우들이 자축을 했다. 사진 | NEW 제공

-이해영 감독의 캐스팅은 남다르다. 기존 배우들이 갖고있는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게한다고 해야할까? 故김주혁의 악역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고, 김성령, 박해준, 강승현까지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냈다. 캐스팅에 대한 기준, 이해영 감독의 눈은 어떤지 궁금하다.

좋은 배우가 좋은 이미지를 만든다. 우선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게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나를 궁금하게 하거나,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더 하고 싶게 만드는 등 이러한 얼굴이 있는 것 같다.

(류)준열이가 나에게는 그런 얼굴이었다. 또 극중 농아로 나오는 이주영 배우가 그런 얼굴이었고, 강승현, 진서연 등이 그랬다. 배우는 계속봐야하니까. 첫 인상이 완벽하게 한 눈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점차 하나씩 캐릭터를 통해 채워나가면서 완벽한 미장센으로 탄생되는 얼굴들이 내 기준에는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출연 배우들이 풍기는 이미지를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독전’ 결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열린 결말은 관객들에게 궁금증 혹은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결말은 처음 시나리오부터 정해져 있었다.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하다, 답이 나오지 않아 내린 결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들에게 캐스팅을 할 때부터, 투자사에게도 늘 불변의 엔딩이었다. 여기에 대한 이유도 있다. 내가 느낄때는 이 ‘독전’이라는 이야기가 ‘누가 누구를 응징하거나, 누가 누구를 처단하는 것으로 해소되는 이야기일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시선도 각각 다르다는 의미도 된다. ‘독전’은 극중 원호(조진웅 분)를 따라가는 이야기였다, 어느순간 락(류준열 분)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매혹되는 순간이 오더라. 그래서 누구의 승리로 끝난다고 해서, 명쾌한 엔딩이 될 수 없다고 생각을 했고, 누구의 승리일 수도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제가 생각할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건물 외경으로 빠졌을 때 총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봤을 때 각각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 인물들이 각각 연기했던 감정을 관객들도 느끼길 바라지 않았나 싶었다. 굉장히 설명하기 어려운 뉘앙스이긴 한데, 각각의 생각하는 지점에 따라 다른 것은 분명하다.

-이해영 감독에 대한 또 다른 수식어가 존재한다. ‘방송하는 감독’ 이해영이다. 영화 프로그램부터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수요미식회’까지 감독 이해영이 풀여낼 수 있는 콘텐츠는 비단 영화 뿐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방송에서도 선호하는 게스트다.

일단 나에게 방송은 어떠한 자의식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로 데뷔한 뒤에 2007년도에 EBS에서 하는 ‘시네마 천국’이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변영주, 김태용 감독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영화를 놓고 수다를 떨듯이 했다. 두 감독님은 너무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분들이라 사람들에 대한 매력에 더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방송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자연스럽게 다른 방송도 섭외가 들어왔다. 사실은 방송을 재미있어하기도 하지만, 어떨때는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방송을 하면서 창작자로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또 나에게는 생존을 위해, 목적지까지 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긴장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또 감독이라는 사람을 방송매체를 통해 속속들이 잘 알고있다고 여겨질때 작품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더라. 저 너머 어딘가에서 작품을 하고, 작품으로만 대중들과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토] 이해영 감독
이해영 감독.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감독 이해영의 꿈은 무엇인가.

제가 까먹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인터뷰에서 “장래희망이 새로 생겼다. 조지 밀러 감독처럼 70세가 넘어서 ‘매드맥스’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라고 했더라.(웃음) 굵은 필모를 갖고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늙었을 때 괴팍한, 센,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물론, 인문학적으로 좋은 영화도 만들고 싶다.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에너지를 거침없이, 끝까지 끌고나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차기작이 궁금하다.

아직은 ‘독전’ 안에 있는 느낌이다. 영화를 개봉할 때 마다 칠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극장에 오신다. 이번에는 이 센 영화를 친구분들을 보여드린다고 극장에 다 데리고 오셨다. 무대인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앞에 계신것을 보고 정말 울컥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하니 더 열심히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쯤되면 ‘뭔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독전’을 찍을 때 도시적인 화려함과 센 역할에 대한 매력에 중독된 것 같다. ‘이 동네(범죄 블록버스터 물)에 왔는데, 솔직히 한번 더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시간이 지나봐야 할 것 같다. 너무 길지 않게, 다른 작품으로 빨리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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