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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연금이라 쓰고 세금이라고 읽는다지만…’

1988년 첫 도입 돼 시행 30년을 맞는 국민연금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다 연금수령 나이가 점점 높아지면서 국민 불안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온 섣부른 개편안이 화를 키웠다.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와 관련해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조정, 수급개시 연장 등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성난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오는 17일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결과보고서에 대한 공청회를 앞두고 관련 내용이 처음 나온 10일부터 12일까지 제기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약 900여건. 청원자들은 “국민연금공단에 약탈당한 잃어버린 10년을 돌려주세요” “국민연금 의무가입 폐지” “필수가 아닌 선택제로” “국민연금 인상률 비례 적용이 필요하다”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도 “내가 낸 연금 돌려주던가 대출이라도 해줘!!”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왜 당신들이 결정하나요?”라는 항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11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등은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결과 보고서를 내놓았다. 재정계산이란 국민연금법에 따라 국민연금 장기재정수지를 계산해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운용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으로 5년마다 실시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3차 재정계산(2013년 시행) 당시 추정했던 때보다 3년 이른 2057년에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산됐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40년 남짓하다. 제도발전위원회는 70년 뒤인 2088년까지 1년치 연금을 지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총 두가지 방안을 내놓았는데, 모두 현재 9%인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국민연금의 금고 수입은 줄고,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액의 비율)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다만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는’ 낀 세대의 저항감을 어떻게 줄여나가느냐는 중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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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라는 취지의 ‘국민연금 급여인상 사회적 논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제도발전위원회는 1안으로 올해 45%인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서 내년에 보험료율을 10.8%로 올리는 안을 제시했다. 20년간 9%에 머물러있던 보험료율을 두자릿수로 올림으로 해서 현행 국민연금법 규정(2028년 40% 하향조정)과 달리 연금지급액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2안은 소득대체율을 해마다 0.5%씩 낮춰 10년 뒤인 2028년에는 40%로 떨어뜨리는 현행 국민연금법 규정은 유지하되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2028년이나 2033년까지 1단계 조치로 보험료를 13%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는 현행보다 4% 포인트 올라간다. 아울러 2038년부터는 5년마다 1세씩 연금수급 개시 연령은 65세(2033년)에서 68세(2048년)로 상향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60세 미만에서 2033년까지 65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가입 기간을 현재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해 국민연금 지급 사각지대를 줄인다는 계획도 나왔다.

제도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인구변동에 의해 2060년에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가입자를 앞지르게 된다. 하지만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와 비교하면 소득대체율은 70%에서 45%로 절반이 줄어들었고, 연금수급 연령도 60세에서 65세, 앞으로는 70세까지 계속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연금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에도 물음표가 많아지고 있다. 소득대체율이 줄어들면 연금 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노인층은 노후소득보장이 어려워지며, 연금수급 연령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평균수명이 짧은 저소득층 노인에게 불리해진다. 일각에서는 635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1%포인트만 높여도 고갈 시점을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국민연금 개편안은 정부안이 아닌 자문 안이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다음날인 13일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gag11@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