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막식
2016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2020 도쿄올림픽을 알리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2016.8.21/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 사건을 은폐하는 정부 당국과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의 대립을 다룬다. 드라마는 에필로그에서 ‘진실은 숨어서 우리를 계속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체르노빌의 유일한 선물이다. 나는 한때 진실의 대가가 두려웠으나 이제 다만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 말은 사태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의 독백이다. 그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2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레가소프는 국제사회에선 체르노빌의 진실을 숨겼지만, 소련 법정에선 또다른 체르노빌 사고를 막기 위해 진실을 말한 인물이다. 그의 죽음은 소련 당국이 핵반응로 설계결함을 인정하게 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조작업도 이끌어냈다. 소련 지도부는 체르노빌의 정화 작업을 위해 60만명이 넘는 인원을 징발해 현장에 투입했다. 방사능 피폭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동자의 작업 시간을 조절했다. 그럼에도 다수의 노동자가 질병으로 고통받고 사망했다. 소련 정부는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죽음의 땅이다. 최근 체르노빌에 대한 뉴스는 지난 10일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체르노빌 원전에 방호덮개를 씌웠다는 것이다.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럽부흥개발 은행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2억 달러를 모았다고 전해진다. 방사능 오염이 사라지는 데는 짧게는 수 백년, 길게는 수 만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방사능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광범위하게 피해를 주는지 그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체르노빌 사건은 인근 지역에 수많은 암환자를 양산하는 등 유럽 전역에 엄청난 두려움과 타격을 주었지만 우리에겐 떨어진 거리 만큼이나 먼 얘기였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지역 역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8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 제1 원전 건물 지하에 고농도 오염수 1만8000t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고 있어 관련 대책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매체는 방사능이 공기 유출에 한하지 않고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컨트롤 되고 있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내년 일본 도쿄에서는 올림픽이 열린다. 이제 1년 남았다. 수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테스트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선수촌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가 원전사고로 부터 완전히 복구됐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방법으로 올림픽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신치용 선수촌장은 “대표팀의 경우 별도 음식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분산해서 치러지는 경기 특성상 대표팀의 모든 식사를 별로도 준비할 수는 없다.

최근 일본은 대한 자유무역의 근간을 흔드는 수출규제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그 대응 방법으로 일본산 불매운동과 함께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 하자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이 평화의 제전 올림픽을 후쿠시마 복원에 이용하는게 어울리지 않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일본경제침략 대책특별위원회의 최재성 위원장은 “후쿠시마 농산물에 대해 거짓으로 강변하며 자국민마저 외면하는 식품을 전 세계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식탁에 올리겠다고 한다. 정치에 눈이 멀어 올림픽 선수들까지 인질로 삼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음식을 섭취한다고 해서 금세 이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체내피폭의 차이도 있다. 그러나 방사능은 빠져나가지 않고 조금씩 몸속에 쌓이면서 면역체계와 DNA를 파괴한다. 그 악영향은 자신의 세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현장에 출동한 한 소방관은 방사능에 피폭되며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그의 아내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방사능에 오염된 남편과 접촉했다. 그녀의 무지도 있었지만 죽어가는 남편을 홀로 둘 수 없었다. 남편 사망 후 그녀는 출산을 했고 태어난 아이는 4시간 만에 숨졌다.

얼마전 KBS ‘지식채집 프로젝트 베짱이’는 ‘원전폭발 8년 후쿠시마는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현 상황을 다뤘다. 일본의 체인 편의점들이 후쿠시마산 쌀을 사들여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후쿠시마의 벼농사 지역 바로 옆에 방사능 오염토가 피라미드처럼 가득 쌓여있는 모습도 방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리기 보단 이 정도 오염이면 괜찮다는 식으로 방어논리를 펴고 있다.

방사능 올림픽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2020도쿄올림픽 성화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 떨어진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고 원전에서 70㎞ 떨어진 지점에선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