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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동효정 기자] ‘이러다 말겠지’

어쩌면 일본 정부가 그랬듯, 기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한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어느 시민단체도, 정치권도 불매운동을 유도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1945년 8월 광복을 이끌어 낸 대한민국의 ‘얼’은 2019년 8월에도 건재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일본산 맥주, 유니클로 등 일본과 연관된 브랜드나 기업들은 직접적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고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혐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화장품 브랜드 DHC의 경우 아예 대한민국 유통업계에서 퇴출됐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국민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불매의 대상은 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국민들은 식약처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는 식품 기업들을 찾아내거나, 지배구조를 분석해 일본 지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을 거론하며 불매운동 기업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에 언급된 기업의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릴 때면 국민들은 ‘성과가 나타났다’며 크게 기뻐했다.

‘이번엔 다르다’

기자도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번 사안을 되짚어보면 일본과 경제적으로 얽힌 우리로서는 일본기업 이전에 우리기업과 국민에게 피해가 먼저 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본제품을 취급하는 국내기업들이 불매운동 영향으로 직원 고용에 애를 먹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맥주 ‘삿포로’와 ‘에비스’를 수입,유통하는 엠즈베버리지는 불매운동 이후 매출이 급감하자 전 직원 무급휴가를 결정했다. 대표이사까지 포함해 직원들은 주 1회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불매운동이 지속되는한 급여 삭감도 각오한 상태다.

공장 부품에 일본산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또다른 기업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해당 부품은 일본의 기술력이나 성능과 견줄 만한 국내제품이 전무하다. 유럽산을 쓸 순 있겠지만 가격 면에서 일본제품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며 “기업은 이윤을 내야하는 주체라 가격 대비 성능을 계산한다. 무조건 모든 원료와 설비를 국산으로 대체하면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결국은 국민의 손해”라고 말했다.

스시집이나 이자카야 등 일본 음식점을 운영하는 국내 자영업자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매장운영을 못했거나 음식 맛이 없어서가 아닌, 단지 ‘일본음식점’이라는 이유만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 파리만 날리는 곳이 적지 않다.

지금 국민들은 일본의 과거 침략 사죄, 배상과 대(對)일본 경제의존 탈피를 위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기업이 아닌 우리국민과 우리기업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가 감정적인 불매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의 추를 되돌려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일부가 아닌 전 국민의 ‘뜻’으로 시작된 불매운동이기에 일본인이나 일본연관 기업 죽이기에만 치닫지 말고 일본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우리기술이 발전하는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우리기업들이 원료부터 포장까지 국산품으로 대체 가능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는 ‘국산화’를 소리로만 외칠 게 아니라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으로 기업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야 한다.

vivid@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