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 Mike Marshall Baseball
1974년 106경기에 등판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전 LA 다저스 괴짜 투수 마이크 마샬. 2일 78세로 사망했다. AP연합뉴스

[LA=스포츠서울 문상열전문기자]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4000만 달러)을 받는 LA 다저스 트레버 바우어는 괴짜다. 자신 만의 독특한 훈련법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바우어의 원조격이 있다. 그 역시 LA 다저스 출신이다.

6월2일(현지 시간) 78세로 타계한 우완 마이크 마샬이다. 메이저리그 14년 동안 9개 팀을 거친 마샬은 1974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메이저리그판 장명부’였다. 앞으로 깨질 수 없는 기록이다. 106경기에 등판해 83경기를 마무리했다. 아울러 13경기 연속 구원등판했다. 불가능한 등판과 연속 경기 출장이다. 요즘은 불펜투수도 3경기연속 등판을 하지 않는다. 두 기록은 불멸이다.

이 해 선발 등판없이 106경기에 출장해 208.1이닝을 던졌다. 15승12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2.42로 다저스의 역대 4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투수 왕국 다저스 최초의 사이영상 수상자는 돈 뉴컴(1956년), 돈 드라이스데일(1962년), 샌디 쿠팩스(1963, 1965, 1966년)에 이은 수상이다. 당시 21세이브가 시즌 최고 기록이다. 1974년 다저스의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포스트시즌에서도 7경기에 등판해 0.75의 빼어난 피칭을 했다.

통산 97승112패 188세이브 3.14의 기록을 남겼다. 1973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수상은 뉴욕 메츠 에이스 톰 시버가 받았다. 1972~1974년 3년 연속 65, 92, 106경기 등판으로 시즌 최다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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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서 5-2 승리를 지킨 마이크 마샬을 LA 다저스 월터 앨스턴 감독이 축하해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저스 시절 “월터(앨스턴) 감독과 모두 얘기를 마쳤다”면서 ”내가 웜업을 하게 되면 게임에 나가는 것이다”고 했다. 엘스턴 감독은 다저스가 배출한 명예의 전당 감독이다.

미시건 태생인 마샬은 196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1960년에는 MLB에 드래프트가 없었다. 프로 생활을 유격수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투수로 전향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투구 방법을 가르치고 옹호했다. 1978년에는 미시건 스테이트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한 학구파 메이저리거였다. 그러나 마샬의 이론은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2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3차례 세이브 1위를 기록했다. 스크루볼이 주무기였다.

moonsy10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