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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도쿄=김용일기자] “정말 꿈 같은 시간이었다.”
취재진 앞은 물론, 공개된 장소에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김연경(33)은 공동취재구역을 걸어오면서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16년 국가대표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보였다. 그는 “사실 누구도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를)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조차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경기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면서 “다만 (준비 과정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생각 때문에…”라며 눈물을 보였다.
‘캡틴’ 김연경이 국가대표로 마지막 무대인 2002 도쿄올림픽을 4위로 마쳤다. 여자 배구대표팀은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트 스코어 0-3(18-25 15-25 15-25)으로 패했다. 조별리그 일본전과 8강 터키전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로 국민적 지지를 얻은 대표팀은 내심 메달을 노렸지만 상대와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은 김연경이 11득점으로 유일하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김희진(8득점), 박정아(7득점), 양효진(5득점) 등이 분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세르비아의 기둥인 티아나 보스코비치에게 33득점을 허용했다. 1997년생으로 터키 엑자시바시에서 뛰는 그는 김연경과 2018~2019시즌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앞서 준결승까지 7경기에서 159득점으로 이 부문 1위였는데 한국전에서도 저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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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앞서 여자 배구가 4강까지 진격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학교 폭력 논란으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한 ‘쌍둥이 자매’ 이재영, 이다영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김연경을 중심으로 대표팀은 ‘원 팀 정신’을 발휘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특히 4개월여 외부 생활을 자제하면서 진천선수촌서부터 도쿄까지 피나는 훈련을 해왔다. 김연경과 양효진, 김희진 등 2012년 런던 대회(4강)와 2016년 리우 대회(8강)를 모두 뛴 황금세대도 “이 정도로 준비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냈기에 선수들은 경기 직후 기념촬영을 하며 모두 미소지었다. 김연경은 선수들에게 “웃어”라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지난 브라질전 직후에도 그랬듯이 김연경과 주력 선수들은 세르비아 코치진과 인사하면서 우애를 다졌다. 보스코비치 뿐 아니라 브란키차 미하일로비치 등이 김연경에게 다가와 포옹하기도 했다.
다만 김연경에겐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기였고, 동료이자 후배 선수도 그동안 많이 의지한 김연경과 마지막으로 뛴 경기다. 코트를 빠져나오며 섭섭함의 눈물을 보였다. 양효진은 “대표팀에서 연경 언니에게 의지를 많이 해왔다. 멘탈도 좋고 세계적인 선수여서 힘들 때마다 해주는 말이 동기부여가 됐다”며 “계속해서 롤모델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김희진은 “연경 언니 등 선배들이 후배가 다시 시작할 좋은 발판을 마련해준 것 같다”며 “이번 대회가 후배에게 희망을 주는 대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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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산여고 3학년이던 지난 2005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성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던 김연경은 지난 16년간 팀의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 구실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 그는 도쿄올림픽이 마지막임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국가대표는 내게 무겁기도 했고 큰 자부심이었다”며 “한국에 가서 (배구협회) 회장님과 얘기를 나누겠지만 사실상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마지막”이라고 했다. 내년 아시안게임엔 출전하지 않을 뜻을 밝힌 것. 이어 김연경은 “지금 머릿속이 하얗다. (취재진 질문에) 대답이 잘 안 나온다”며 “이번에 많은 관심 속에서 대회를 치렀다. 여자 배구를 조금이나마 알리게 돼 기쁘다. 꿈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