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김동영기자] ‘낭만’이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결정적일 때 나타나 팀을 구했다. 어떤 찬사도 부족해 보인다. “끝났다”던 두산 장원준(38)과 김재호(38)가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김재호는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정규시즌 삼성과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에 9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2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

11회말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3-3으로 맞선 11회말 2사 만루에서 좌전 적시타를 날리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안타를 때린 후 환하게 웃었다.

올시즌 리그 14호, 통산 1260호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다. 개인으로는 4번째다. 2020년 6월6일 잠실 KIA전 이후 1083일 만에 끝내기 안타를 때렸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그것도 제대로 왔다. 팽팽히 맞선 상황. 패할 뻔했던 경기다. 김재호가 두산을 통째로 수렁에서 건져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일에는 장원준이 날았다. 삼성과 주중시리즈 첫 번째 경기에 선발로 나섰고, 5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4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958일 만에 선발로 나섰고, 1844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드라마’를 썼다. 역대 11번째, 좌완 4번째로 통산 130승 고지도 밟았다. 37년 9개월 22일에 130승을 따내며 역대 좌완 최고령 신기록도 썼다.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로 군림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8시즌 연속 10승을 달성했다(군 복무 기간 제외). 2015~2016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의 주역이었다.

2018년부터 급격하게 내리막을 탔다. 2019년 6경기, 2020년 2경기 출전에 그쳤다. 2021~2022년은 각각 32경기와 27경기에 나섰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각종 부상에 시달렸고, 수술도 받았다. 구속도 떨어졌고, 제구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장원준은 끝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그래도 장원준은 묵묵히 준비했다. 기회가 왔고, 보란 듯이 역투를 펼쳤다. 5이닝 4실점이면 빼어난 호투라 하기는 어렵지만, 장원준이 있었기에 두산도 7-5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장원준은 등판 후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만 했다. 피하다가 볼넷을 주는 것보다, 가운데 던져서 홈런을 맞자는 마음이었다. ‘이제 안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재호도 뭉클했다. “1승을 위해 몇 년간 노력했다. 그걸 옆에서 봤다. 너무 많이 던졌다. 몸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1승을 위해 계속 준비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고, ‘정말 본받아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어 “친구지만, 운동선수로서 정말 배워야 할 자세다.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상황이 전과 달랐다. 앞에서 축하하기가 좀 그렇더라. 뒤에서 했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김재호 자신도 힘들었다. “타석이 가시밭이었다. 어떻게든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부상을 달고 있는 선수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부분에 얽매였다. 결과를 내지 못하니 점점 잊혔다. 질타도 많이 받았다”고 짚었다.

또한 “자존감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올해 자신감을 찾자는 생각을 했다. 캠프 때부터 그랬다. 초반 잘 안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찾지 않았나 싶다. 좋은 것 같다. ‘이런 날이 또 올까’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 “잘 못해도, 그래도 버티는 선수가 되고 싶다. 베어스 선배님들이 나갈 때 보면, 끝까지 경쟁하지 못하고, 2군에 있다가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지 않고 싶다. 끝까지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고, 그리고 끝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원준도, 김재호도 마음은 같다. “끝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등 떠밀려 그만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공을 놓지 않았고, 배트를 놓지 않았다.

이승엽 감독은 “베테랑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팀의 리더다. 더그아웃에서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도 41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선참들의 마음을 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찬란한 전성기가 있지만, 이제 과거의 일이다.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면은 있지만, 능력은 여전하다. ‘낭만야구’가 여기 있다. 그래서 야구가 아름답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