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한 ‘천재’의 삶은?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음악적 ‘천재’ 모차르트 vs ‘알면서도 못한’ 살리에리

[스포츠서울 표권향 기자]| 우연히 들은 음악에서 떠오르는 이가 있는가. 어릴 적 자장가부터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그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순간까지.

세기의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이 모든 순간을 다른 시공간에서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야기는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풀어간다.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이것이 한계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그나마 있는 그(!) 감정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털어놓는다.

아기 때부터 들었던 ‘작은 별’, 그리고 음악 시간에 시험 들었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식’ ‘마술피리’ 등 흘려 퍼지는 음악들이 어떤 스토리로 탄생했는지.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국 대표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을 바탕으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무대에 오른 작품은 그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질투해 절망으로 몰아버린 최악의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에 도달은 파멸의 대가들 치른다. 이게 욕심과 자만의 ‘선’ 끝이다.

작품은 고작 10세밖에 안 된 천재에게 질투를 느낀 인물로부터 시작한다. 우스운 게, 다 큰 어른이 고작 어린아이에게서 느낀 자존감이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심리상담’ 받으라고 하겠지만, 삼촌뻘이 앞날을 알지 못했다. 그 역시도 당시에 존경받았던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는 그 이상의 인물을 보고 ‘나 살자고’ 한 인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장은 어떠했는가.

가난한 시골 출신에서 궁정 음악가까지 오른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 권호산·권율·김재욱, 신의 은총을 받은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 문유강·최정우·연유석 등이 출연한다.

◇ 아름다운 음률 속 숨겨진 아픔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로 꾸며진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무대 위의 향연은 금빛 계단을 타고 조명에 어우러진 발자취를 따라 마치 영화의 프레임을 따라가는 듯 빨려든다.

흑과 백의 음탕하고도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말과 생각으로 ‘미치광이’ 같은 모차르트가 있다. 살리에리가 말하는 신이 선택한 도구인 모차르트이기에 ‘감히’ 손 델 수 없다. 그를 보며 증오와 혐오만 쌓일 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살리에리의 ‘일상’이다.

그런데 우스운 게 살리에리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음악가였다. ‘국왕’에게 총애받는 이지만, 겉모습만 깨끗할 뿐 사실 속은 검고 썩어 문드러진 인간이었다. 본 품만 가진 깨끗한 악보만 가진 인간이다.

하지만 수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모차르트를 보고, 자신의 최악을 깨닫는다.

천국과 지옥의 문은 열린다. 무대 위 그리워진 십자가가 앞선 그리고 이후의 생을 의미한다.

화려한 듯 천막으로 드리운 연출에서 보이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용서의 의미는 극의 감정선을 음악에 섞여 감정선을 드높인다. 커튼 뒤 그림자로 비치는 십자가가 보여준다.

◇ 천박한 ‘La generosa’가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순간

살리에리는 ‘정신병자’ 같은 모차르트를 보며 자신을 ‘이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술과 도박, 여자와 향락에 빠진 모차르트. 죽이고 싶지만, 죽이지 못하는 이의 울부짖음과 뜻을 알지도 못해도 믿었던 통곡으로 울부짖는다.

모차르트의 여인들에게 ‘La generosa’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천박한 여인’이라는 뜻으로 불렀지만, 후엔 자기의 여인에게 ‘관대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여인을 이용한 두 얼굴의 모습. 후에 자신의 밑바닥에 이마를 치지만, 알아줄 자는 바로 그 자신뿐이다.

커튼과 조명으로 덮인 그림자에 두려워하는 살리에리는 금빛 계단 위 모습과 상반된다. 천국관 지옥의 문이 열려, 그림자로 드리워진 십자가에 벌벌 떠는 살리에리. 그런데 모차르트 역시 실루엣에 통곡한다. 이들이 진정 사죄하고 싶은 이는 누구인가. 아니,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또 당신이 사죄해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

마지막 순간, 진정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자는 누구인가? ‘아마데우스’는 이 시대의 용서받는 자, 용서받지 못한 자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 더, 진정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자에게 말한다.

숨죽이고, 두 사람의 삶에 빠져들게 하는 ‘아마데우스’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