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덕션 25주년&10시즌 기념 공연 중

마지막 52만 5600분 여정

진정한 사랑과 위로 통한 치유 시간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세상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다름’이라는 선을 긋고 경계한다. 차가운 시선은 상대가 누구든 예외 없다. 애절한 호소에 손을 내밀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인류애가 점점 단절되는 이 시대에 젊은이들이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노래한다.

뮤지컬 ‘렌트’가 한국 프로덕션 25주년 및 열 번째 시즌 기념 공연으로 절찬 공연 중이다. 1996년 미국 브로드웨이 첫선을 보인 이후 29년째 전 세계를 매료시킨 작품다운 인기를 실감하듯, 2년 만에 국내에서 펼쳐지는 무대 역시 시즌 개막과 동시의 흥행궤도에 올랐다.

이번 시즌은 세대교체를 통해 신선한 돌풍을 예고한다. 기존 배우들과 뉴 캐스트의 조화로 새로운 계절을 마련했다. ‘로저’ 역은 이해준·유현석·유태양으로 전면 교체했다. ‘마크’ 역 진태화·양희준, ‘미미’ 역 김수하·솔지, ‘엔젤’ 역 조권·황순종이 나선다. 앞선 2시즌에서 ‘로저’로 활약했던 장지후는 황건하와 함께 ‘콜린’ 역을 연기한다. ‘모린’ 역은 김려원·김수연, ‘조앤’ 역 정다희·이아름솔이 맡는다. 구준모는 2시즌 연속 원 캐스트로 ‘베니’ 역을 책임진다.

◇ 시간의 가치, 무엇으로 잴 수 있는가?

‘렌트’는 스토리보다 대표 넘버 ‘Season of Love’가 대중에게 더 알려졌다. 합창대회의 단골 선곡인 데다, 미니홈피 시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배경음악(BGM)으로 장식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거리에서 캐럴과 같이 울려 퍼지는 곡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서는 1막과 2막을 나누는 ‘Season of Love’는 이후 리프라이즈 버전으로 지속된다. 브로드웨이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사망한 제작자 조나단 라슨을 기리기 위해 2막의 첫 곡으로 불리고 있다. 29년의 세월이 흘러, 이젠 극 중의 인물들에게 남은 일 년,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52만 5600분)’을 예고한다.

‘Season of Love’는 시간의 가치를 ‘1분’ 단위로 잴 수 없지만, 이 안에서 나눈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고 말한다. 노래 속 시곗바늘의 주인공은 누구 한 명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앙상블이 솔로로 나선다. 이때 배우들의 시선은 모두 그를 향한다. ‘함께’라는 소중한 의미를 더한다.

◇ 차가운 달빛보단 따뜻한 별빛은 없을까

‘렌트’는 ‘빌리다’ 외에도 ‘찢겨나간다’라는 뜻도 품고 있다. 각자 찢긴 상처를 상대로부터 치료하면서 모자이크를 이룬다.

작품은 1990년대 사회의 기득권이 외면했던 동성애, AIDS, 마약 중독 등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다름’이라는 경계선을 긋는다.

극 중 미국 뉴욕 할렘가에 모인 젊은 예술가들이 부딪히고 감당해야 했던 삶을 통해 대변한다. 이 시대의 ‘빌런 집합소’처럼 보이지만, 편견을 버리면 치료가 절실한 이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인정을 위한 호소보단 사랑을 통한 치유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52만 5600분을 비추는 달은 때론 차가운 푸른빛을 띠다가 고름으로 꽉 찬 노란빛으로 변한다. 희망의 끝을 바라보는 환희의 보름달은 희망과 환희를 비춘다.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자유’

모두가 같을 수 없듯, 영원한 것도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 사과할 줄 아는 용기다. 사회의 골칫덩어리로 불리는 이들은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마지막 순간 홀로 남는 ‘마크’는 다신 마주할 수 없는 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죽음을 앞둔 친구들 앞에서 슬픔의 눈물을 삼키며 행복한 순간을 영원의 선물로 남기는 것이다.

죽음이 슬픈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 때문이다. 언젠간 생명선이 끊겨 결국 이별하지만, 필름을 통해 영원히 서로의 심장에서 숨 쉴 친구들을 기억하려 한다.

‘렌트’는 다가올 순간을 예측할 수 없듯 지금 이순간 소중한 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올겨울 산타클로스의 선물 같은 ‘렌트’는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