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던진 물음표…해답은 ‘나를 말하는 사람’

시대 거스른 모든 ‘고민러’ 향한 메시지

‘말하는 자 vs 듣는 자’ 사이의 진심 어린 소통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 필수 교양극으로 불리는 ‘레드북’이 절찬 공연 중이다. 작품의 흥행을 이끈 배우들은 물론 다크호스로 떠오른 뉴 페이스까지, 초호화 캐스팅 라인업과 함께 2년 만에 돌아온 만큼 스케일이 커졌다. 앙상블 캐릭터도 추가됐다는 것. 침이 마르도록 백번, 천번 얘기해도 모자랄 도파민 터지는 넘버들과 숨은그림찾기가 웃음과 감동을 책임진다.

뮤지컬 ‘레드북’은 19세기 가장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괴짜로 불리는 ‘안나’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다. 숙녀보단 ‘나’를 선택한 ‘안나’와 정통 영국 신사 ‘브라운’이 서로를 통해 이해와 존중의 가치를 배워가는 이야기다.

작품을 겉핥기 한다면 여성 서사극에 치우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 시간 속 모든 이의 꿈을 대변한다. 지치고 주저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하라고 목소리 높여 응원한다.

시시때때로 좌절과 실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 ‘레드북’은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되짚는다.

◇ ‘안나’의 글로 표현되는 환상과 몽환의 연속

무대는 월트디즈니 감성을 덧입힌 듯 애니메이션 감성을 뿜어낸다. 모든 공간은 ‘안나’를 대표하는 ‘책’을 공통으로 표현한다. 그의 상상력이 책 속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글쓰기’의 시작과 위기, 지속되는 공간을 그려낸다.

‘안나’의 상상 속 세계와 심리적 변화는 LED 영상과 다채로운 조명으로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오색빛깔을 비추고, 밤하늘의 별들이 모여 빛의 향연을 펼친다. 절정의 순간에는 핀 조명으로 굳센 신념과 용기를 강조한다. 이번 시즌에 추가된 바닥을 수놓는 눈의 결정체와 같은 조명은 감정선의 조화를 더욱 부각시킨다.

흐름의 깊이는 어깨를 들썩였다 흐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넘버들이 돕는다. 드라마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전형적인 뮤지컬 형식의 템포로 지루할 틈이 없다. ‘안나’가 대표 넘버 ‘사람은 마치’를 부를 땐 ‘브라운’처럼 그를 따라 토끼 귀를 그리면서 ‘마치, 마치!’를 따라 하게 된다.

◇ ‘제2의 누가’ 아닌 ‘제1의 나’ 탐색

신사의 나라 영국,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안나’는 ‘펜’으로 세상을 심판한다. 당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여성이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도 ‘야한 소설’을 쓴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제한적이고, 귀족이어도 남녀로 갈린 신분사회에 도전장을 던진, 지나치게 뻔뻔하고 솔직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여성들이 쓴 야설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는 시대와 국적을 넘어, 여성이 숨겨둔 욕망을 글과 그림으로 끝없이 표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드북’은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과연 ‘여성’에게만 집중된 이야기는 아니다. 극 중 ‘안나’가 아닌 ‘로렐라이 언덕’의 주인공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클로이’, 사랑을 숨겨온 ‘바이올렛’을 통해 성장통을 겪으면서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린다.

지금 놓인 힘겨운 상황이더라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소중한 꿈과 희망을 응원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존재’가 있기에 지쳐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남의 시선과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제2의 누가’ 아닌 ‘제1의 내’가 돼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안나’가 말하는 ‘야한 생각’이 이 시대에서 말하는 ‘섹시한 생각’이 아닐까.

◇ 진실한 사랑을 원한다면…‘? → !’

결국 인생의 방정식은 ‘사랑’으로 완성된다. 날씨처럼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슬플 때면 ‘야한 생각’을 한다며 ‘안나’가 찾는 ‘올빼미’는 야릇하면서도 엉뚱한 발상이지만, 사랑스럽다. 그만의 상상 속 이성과의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상대를 내 방식대로 바꾸려는 것이 아닌 상대에 맞춰가야 한다고 꼬집는다. 사랑에는 ‘당연’한 것도, ‘다름’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로 살고 싶은 ‘안나’가 ‘말하는 사람’이라면, 오직 ‘신사’로 사는 법밖에 모르는 ‘브라운’이 ‘듣는 사람’이다. 이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진실한 사랑을 통해 서서히 변화되고 마침내 동화된다.

소중한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법정에 선 ‘안나’를 공격하는 이들과 지키려는 이들의 대립에서도 공통분모처럼 겹치는 부분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랑을 준비하는, 사랑하고 싶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안나’ 역 옥주현·아이비·민경아 ▲‘브라운’ 역 송원근·지현우·김성식 등이 ‘행복의 열쇠’를 선사한다.

‘난 뭐지’라는 물음표를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해답을 제시하는 ‘레드북’은 12월7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