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MBC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 연출을 맡은 권락희 PD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최종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인감독 김연경 시즌1은 8구단을 향한 첫 걸음, 씨앗을 심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실업 팀과 프로 팀의 상생에 이 프로그램이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스타 플레이어의 예능이 아니라, 여자배구 8구단 창단의 마중물이자 배구 생태계에 작은 균열을 내보려는 시도라는 포부가 느껴진다.
지난 9월 28일 첫 방송한 ‘신인감독 김연경’은 배구 황제 김연경의 구단 창설 프로젝트를 담은 예능이다. 김연경은 ‘필승 원더독스’라는 팀을 창단해 훈련과 경기 운영, 선수 관리를 전담했다.
원더독스에는 갑작스러운 은퇴로 이목을 모았던 표승주를 비롯해 프로 팀에서 방출된 선수, 실업으로 밀려난 선수, 대학 팀에서 끌어올린 선수 등 14명이 모였다. 이름값보다 사연이 먼저 떠오르는 언더독 집단이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일종의 도박에 가까웠다. 실제 언더독 멤버들로 팀을 꾸린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예능, 서사, 그리고 8구단 씨앗이라는 명분이 모두 흔들릴 수밖에 없는 포맷이었다.
김연경은 분명 슈퍼스타지만,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 현실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고, 자존심에 상처입고 모인 선수들이 프로 팀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 등등, 기획 단계부터 불확실성이 겹겹이 쌓인 프로젝트였다.

결과는 예상 밖의 반전이다.
원더독스는 지난주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정관장을 3-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실질적인 ‘생존 확정’에 성공했다. 김연경의 리더십도 빛났다.
23일 예고된 마지막 회에서는 챔피언 팀 흥국생명과의 경기를 끝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언더독들의 기세와 감독 김연경의 리더십이 합쳐져 목표에 닿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 셈이다.
시청률도 뒤따랐다. 첫 회 시청률 2.2%로 출발해 4.9%까지 올랐고, 5주 연속 일요일 예능 2049(20~40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일요 예능 강자로 올라섰다.
권락희 PD는 “시청자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했다는데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다. 매일 아침 시청률 보는 재미로 일어난다”고 방싯하며 “김연경 감독이 가장 만족한 경기이자 가장 화를 많이 냈던 경기가 마지막 회에 담겼다.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는 김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본방사수해달라. 많은 스태프가 ‘신인감독 김연경’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관심을 부탁했다.

여기까지는 ‘8구단 씨앗’이라는 구호와 잘 맞아떨어지는 성공 스토리다. 하지만 8구단 창단이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해 가장 절실한지는 짚어볼 대목이다.
프로구단과 같은 엘리트 스포츠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기본 토양이 두터워야 한다. 유소년, 초중고, 대학, 실업팀이 피라미드 구조를 이뤄야 하고 그 정점에 프로팀이 존재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국배구의 현실은 거꾸로 서 있다.
프로는 7개 팀인데 실업팀은 4개에 불과하고, 프로 2부리그도 없다. 선수 풀 자체가 얇은데, 그 위에 1부 리그만 덩그러니 떠 있는 역피라미드 구조다. 스타 몇 명에게 의존하는 가분수 리그가 굴러가는 상황에서 8구단을 하나 더 얹는 일은, 당장의 흥행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건강한 생태계라고 말하긴 어렵다.
몇몇 지자체에서 8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이는 건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소년에서 부터 시작하는 기본 토양에 건강한 씨앗을 뿌리는 논의도 함께가야 한다. 권락희 PD가 말했듯 “실업 팀과 프로 팀의 상생”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고교·대학·실업·프로 2부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어떻게 놓을지, 배구계 전체가 머리를 맞댈 차례다.
김연경 감독은 배구가 더 활성화되고 더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 각오는 8구단이라는 열매에만 머물지 않고, 배구 생태계 전체를 더 두텁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승부수를 던졌고, 이미 뜨거운 불씨를 지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마지막 회로 마무리되는 ‘방송의 엔딩’이 아니라, 역피라미드 구조로 뒤집힌 한국 배구의 토양을 바로 세우는 ‘시스템의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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