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무해한 동물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어본다. 눈 찌푸릴 일 없는 힐링 주말의 루틴…인데…어라?

22년간 한결 같았던 일요일의 루틴이 지난 28일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돌발 출연으로 ‘붕괴’ 됐다. 시청자 게시판은 400건이 넘는 항의글로 ‘벌집’이 됐고, 다시보기 클립까지 비난댓글이 넘친다. 대통령이 뉴스 외의 방송에 출연한 게 ‘거대한 반칙’이라도 되는 양 분노는 뜨겁다.

SBS 최장수 동물예능 ‘TV 동물농장’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틀째 이어지는 가운데, 제작진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에서 벌어졌던 논란과 그 이후 제작진의 대응까지 여러모로 겹쳐지는 풍경이다.

당시 ‘유퀴즈’는 윤 대통령 당선인의 출연 이후 프로그램 폐지, 티빙 해지 등 시청자들의 격렬한 항의에 맞닥뜨렸고, 국민 MC 유재석까지 비난여론에 시달리는 등 호된 후폭풍을 겪었다. ‘알고보면 푸근한 동네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세일즈하고팠던 대통령실 빼고는 시청자도, 제작진도, 유재석도, 상처만 남은 방송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의 출연이라 여론이 좀 달라졌을까? 아니었다. ‘유퀴즈’의 나쁜 선례가 있었는데도 ‘동물농장’은 왜 윤 대통령 내외를 섭외했을까.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취임 초기 지지율이 가장 낮은 대통령 중 하나다. 재임 만 1년을 넘은 최근 국정 지지율이 44%(알앤써치 조사)를 기록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최고 수치이지만 국민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지난해 9월에는 최저 24%(한국갤럽 조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인기 없는’ 대통령을 뉴스 아닌 곳에 캐스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제작진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동물농장’은 제작진보다는 대통령실에서 가장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빼면 유일한 ‘무자식’ 대통령이다. 그래서 그런지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용산 관저에서 개 6마리를 키우고 있다. 아내 김건희 여사는 자칭 ‘개엄마’로 지난 4월 청와대에서 동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개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닌 대통령 배우자가 임기를 운운하며 정책을 선언한 것이 적절한가는 차치하고 ‘동물애호가’ 이미지 하나는 확실히 굳힌 발언이다. 아마도 윤 대통령 내외 입장에서 ‘동물농장’ 만큼 자신들과 코드가 잘 맞는 프로그램은 없었을 듯 하다.

게다가 2022년 기준 합계출산률 0.78명으로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한국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반려인 인구가 폭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양육인구는 약 1400만명으로 추산된다.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윤 대통령에게 같은 반려인들은 매력적인 표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무리한’ 캐스팅은 시청자들의 반발을 산다. 숱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캐스팅이 성패를 좌우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면 망한다”는 선례에도 출연을 강행하면 보통 다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실무진들이 통제할 수 없는 더 윗선이 개입하는 경우다.

그래서 ‘유구무언’인 제작진을 대신해 ‘동물농장’ 사태에 대한 공식입장을 적어봤다.

‘동물농장’은 이날 방송에서 은퇴한 안내견 새롬이가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방송했다. 공교롭게 지난해 12월 새롬이를 입양한 사람의 직업이 대통령이었을뿐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방송에는 헐렁한 실내복 차림의 대통령 내외가 정원에서 반려견들과 노는 모습이 담겼다. 일반 국민이 보기 힘든 ‘그림’이 담기니 방송분량도 다른 에피소드보다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유기동물을 입양한 계기를 설명하다보니 자연스레 “과거 아이를 유산한 슬픔을 겪었고, 반려견을 통해 아픔을 치유했다”는 김건희 여사의 눈물겨운 개인사가 담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방송은 간판 동물예능에서 놓치기 힘든 좋은 ‘꼭지’ 였다.

한편 ‘스포츠서울’은 시청자들의 비난여론에 대해 제작진의 이같은 설명을 직접 듣고싶었지만 “모든 제작진이 연락두절 상태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gag11@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