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3이닝 7실점. 0-10 7회 콜드패로 마침표.
딱히 놀라운 수치는 아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전개이고 결과다.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라운드에 진출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큰 공부를 했다. 세계 최강 수준인 도미니카공화국이 파트너여서 더 많이 배웠다.
한국은 1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8강전을 치렀다. 대표팀 류지현 감독은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은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팀이다. 한국 선수들보다 뛰어난 성적과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래도 류 감독은 “우리도 8강에 진출한 만큼 저력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욕을 다졌다.

사령탑의 바람과 달리 선발투수로 나선 류현진(한화)은 2회에 석 점을 내주고 흐름을 빼앗겼다.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은 단 1이닝 만에 한국 배터리의 노림수를 읽어냈고, 기민하게 대처했다.
주목할 점은 첫 타석에서 높은 커브에 루킹 삼진으로 돌아선 패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만들어낸 중전 적시타를 제외하면, 낮은 코스로 날아드는 오프 스피드 피치를 정타로 만든 장면이다.
류현진은 1회 몸쪽 높은 속구를 ‘보여주는 공’으로 활용하고, 바깥쪽 체인지업과 높은 커브를 섞는 패턴으로 공략했다. 만만한 공이 눈에 보였는지,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은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밀었는데, 2회부터는 높은 코스를 버리는 전략으로 응수했다.
하이 패스트볼에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낙폭이 큰 커브에 배트가 끌려나갈 수밖에 없다. 류현진의 투구폼이 워낙 일정한데다, 피치터널이 긴 편이어서 손을 떠나는 순간에는 판단이 안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셈법이지만, 경기 중 전략을 수정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쩄든, 류현진의 게임 플랜은 상대 타선의 빠른 전략수정 탓에 무력화됐다.

한국 야수들의 송구 정확도가 떨어진 점을 공략한 것도 눈에 띄었다.
2회말 1사 1루에서 주니어 카미네로의 좌익선상 2루타 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나간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홈까지 파고들었다. 타구 스피드와 블게주의 주력을 고려하면 무모한 도전. 그러나 딜리버리맨으로 나선 유격수 김주원의 송구가 3루쪽으로 휘어 여유있게 세이프됐다.
블게주의 ‘개구리 점프 슬라이딩’도 인상적이지만, 긴박한 상황에 빠르게 홈으로 던진 김주원의 송구가 ‘포심’이 아닌 ‘투심’ 궤적으로 날아든 게 아쉬웠다.

비슷한 장면은 3회말에도 나왔다. 무사 1루에서 블게주의 우중간 2루타 때 다시 한 번 홈 접전이 펼쳐졌다. 이정후-김주원-박동원으로 이어지는 컷오프 플레이였는데, 이번에도 타이밍상으로는 본헤드 플레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홈을 파고들던 후안 소토는 온몸을 비틀어 태그를 피했고, 비디오판독 끝에 원심 세이프가 유지됐다.
넉 점 차가 되는 순간,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 선취점과 쐐기점 모두 막을 수 있는 점수였다는 점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안타깝지만, 수준차가 극명했다. 몸값이나 운동능력의 차이만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분절된 플레이 하나하나가 KBO리그 선수들과 현격하게 차이났다. 체득한 기본기가 만든 차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은 매우 유쾌하다. 인플레이가 아니면 흥이 넘친다. 하지만 인플레이, 그러니까 공을 던지고 잡고 치고 달리는 동작 하나하나는 군더더기가 없다. 순간 집중력도 빼어나지만, 정확성이 더 눈에 띈다. 실수를 해도 허둥대지 않는다. 작은 플레이조차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타격도 마찬가지다. 오른어깨(우타자 기준)에서부터 헤드를 던지는 한국 타자들과 달리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은 조금 과장하면 왼허벅지 앞에서부터 던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공을 불러들이는 시간이 짧지 않다. 충분히 받아내는데, 히팅포인트에서부터 면을 만들기 시작하는 인상이다. 배트스피드만의 차이가 아닌, 시속 160㎞가 기본인 리그에서 살아남는 기술로 보였다.

WBC를 통해 세계 야구가 더 깊은 기술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몸을 얼마나 정확하게 제어하느냐의 문제다. 17년 만의 WBC 8강을 통해 한국 야구의 방향성도 보인다. 야구인들이 받아들일지가 의문이지만. zzan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