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마지막 날 웃는 게 진짜라는 걸 저희는 알고 있잖아요.”

수수께끼가 풀렸다. ‘초보 사령탑’ 데뷔 시즌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두산 이승엽 감독의 궁금증이 자연스레 해소됐다. 들뜬 분위기를 좀처럼 볼 수 없는 두산의 비밀인 셈이다.

두산은 7월에 치른 11경기를 모두 이겼다. 팀 역대 최다 연승 신기록이자 초보 사령탑 데뷔시즌 타이기록(2008년 롯데 제리 로이스터)이다. 일반적으로 연승을 이어가면 더그아웃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만연에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활기차게 그라운드와 더그아웃 곳곳을 누빈다. 삼삼오오 짝을지어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 개막 10연승을 질주한 SSG를 포함해 연승 좀 해봤다 하는 팀은 훈련 시간에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두산은 반대다. 분위기만 보면 연승 팀이 맞나 싶은 정도다. 이 감독도 “왜 업(up)되지 않지?”라며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144경기 장기레이스를 치르면 언젠가는 패한다. 패배를 대비하는 게 사령탑의 역할 아니겠는가. 경기는 내가 치르는 게 아니므로 선수들이 좋은 기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두산은 과거 ‘왕조시대’ 때도 들뜨지 않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전임인 김태형 감독(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강력한 카리스마 때문인 듯했지만 선수들을 고개를 저었다. “원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게 공통 답변.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홈경기를 앞두고 ‘캡틴’ 허경민에게 들뜨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마지막 날 웃는 게 진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연승은 어차피 0이 되는 숫자”라고 덧붙였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장기레이스를 치르는 만큼 시즌 중 연승은 그 확률을 높일 뿐이라는 의미다. 우승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연속시즌 한국시리즈 진출 위업을 일군 왕조의 주역들은 지난해 9위로 추락한 수모를 잊지 않고 있다. 한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시즌 중 연승에 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누구보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베테랑들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행동으로 가장 앞에 서서 훈련에 나서니 후배들도 연승 중이라는 것을 잊고 경기 준비에 몰두한다. 홍성흔 김선우 등 두산에서 전성기를 보낸 레전드들도 “우리 팀 진짜 이상하다. 연승하면 경기가 끝나는 순간만 시끌벅적하고, 다음날이면 연패 중인 팀처럼 훈련한다. 분석대상”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 팀이 원래 그렇다”는 선수들의 답은 오랜 전통이자 문화라는 의미다.

이 감독은 “이렇게 훌륭한 팀에서 훌륭한 선수들과 시즌을 치르고 있어 영광”이라고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는 “순위싸움을 본격화하는 8,9월 승부처 때 더 큰 힘을 쏟기 위해 지금은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연승을 이으면 좋겠지만, 끊어지더라도 144경기 중 한 경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나부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리에 취하지 않는 팀. 7월 최강팀인 두산이 무서운 진짜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