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6일 개봉을 앞둔 ‘잠’은 참으로 기이한 영화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수면장애를 한국특유의 무속신앙과 결합한 극적인 구성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안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은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지난 5월 제 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커플의 아이를 낳기 전과 후에 대한 센세이셔널한 영화”(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 에이바카헨)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서로를 위하는 귀여운 신혼부부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준 배우 이선균과 정유미의 힘이기도 하다. 영화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 3편에서 연인연기를 선보였던 두 사람은 네 번째 영화에서 현실부부로 분해 관객을 그로테스크한 공포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선균, “날계란 식감 굿! ‘칸’ 단골 배우 욕심 생겼죠”


“누가 들어왔어.”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의 이 한마디가 모든 악몽의 시작이었다.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단역배우 현수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이 특유의 중저음으로 던진 외마디 소리. 처음에는 잠꼬대인 줄 알았던 아내 수진(정유미 분)은 갈수록 기괴해지는 남편의 수면장애에 몸서리친다.
잠꼬대는 자신의 얼굴을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는 자해로, 냉장고에서 생고기와 날계란, 날생선을 먹는 기행으로 이어진다. 종국에는 부부가 가장 아끼던 존재까지 냉장고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현수를 연기한 배우 이선균은 ‘기생충’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의 소개로 유재선 감독을 알게 됐다. 하지만 유감독이 쓴 대본의 힘에 이끌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출연 배경에 봉준호 감독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긴 힘들죠.(웃음)이후 대본을 읽었는데 일상극같지만 여러 장르가 혼재된 군더더기없는 장르영화였어요. 그때가 팬데믹으로 영화시장이 위축됐을 때라 투자도, 신인 감독 데뷔도 힘든 시기였어요. 역량있는 신인 감독 데뷔를 위해 이 작품을 해야 겠다 마음먹었죠.”


영화는 현수가 몽유병에 시달리는 1부와, 그런 현수의 병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수진이 서서히 변해가는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충격과 경악 그 자체다. 이선균은 날고기, 날계란, 날생선 등을 닥치는 대로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대는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하, 이 영화에서 제 연기가 대체로 자는 신이라 그 장면만 잘 표현하면 되겠다 싶었죠. 배우로서 기괴함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실제 음식 먹는 장면을 촬영할때는 스태프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음식으로 준비해주셔서 비교적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계란을 씹을때는 아그작대는 식감이 쾌감을 안겼죠. 생선이 가장 걱정됐는데 다행히 뼈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전어를 준비해주셔서 사고없이, 더럽지 않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으로 그 해 칸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았던 이선균은 딱 4년 뒤인 2023년 ‘잠’으로 다시금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잠’이 초청받은 비평가주간은 신인감독들만 초청받는 섹션인데 여기 간 것 자체가 응원을 받는 느낌”이라며 “많은 분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니 진심으로 좋았다. 나도 칸의 단골배우가 되고 싶다”고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유재선 감독은 차기작이 더 궁금한 감독”이라고 칭찬을 이어갔다.
◇정유미 “‘좀 더 미쳤어야 했는데’ 아쉬움 남았죠”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 부부는 늘 함께 해야 해.”
만삭의 임산부 수진은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남편 현수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몽유병에 걸린 남편의 이상행동으로 매일 밤을 새고 남편을 감시하는 게 일상이지만 수진은 씩씩했다. 배우가 직업인 남편이 자신의 얼굴을 자해하는 걸 목격한 뒤 남편의 양손에 살포시 오븐장갑을 씌워놓는 스위트함까지 갖췄다.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친정엄마(이경진 분)가 데려온 무당의 한마디에 깨진다. 출산과 육아로 고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진도 서서히 변해간다.
KBS2 드라마 ‘연애의 발견’(2014)에서 장기연애에 지친 여주인공 한여름을, tvN 드라마 ‘라이브’(2018)에서 꿈을 쫓는 신입경찰 한정오 역을, 무엇보다 나영석PD의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윤스테이’, ‘여름방학’, ‘서진이네’의 밝고 해맑은 정유미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잠’의 수진 연기는 정유미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정유미 역시 봉준호 감독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번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봉준호 감독님 번호가 휴대전화 화면에 뜬걸 보고 ‘마침내 나한테도 러브콜이?’라고 설렜죠.(웃음) 전화를 받으니 유재선 감독님을 추천하며 시나리오를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봉감독의 추천이었지만 이내 대본의 유니크함에 반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유재선 감독의 독특한 연출에 힘입어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았지만 정유미는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저한테 이런 얼굴이 있다니 저도 놀라긴 했어요. 막상 스크린에 비친 모습을 보면 ‘좀 더 미쳐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컸죠.”
1983년생인 정유미는 올해 불혹을 넘겼다.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에서 비쳐진 그의 외모가 워낙 동안인데다 후배 배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다보니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결혼은 언젠가 꼭 할겁니다. 제 옆에 누군가 나타나면 그 사람이 제 이상형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음) 나이를 생각하면 스스로 너무 피곤해져요.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편한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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