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넷플릭스 ‘마이네임’이나 티빙 ‘몸값’을 본 시청자라면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아’)에서 배우 장률이 등장했을 때 묘한 위기감을 감지했을 수 있다.

충격적인 악과 광기를 강렬하게 표현했던 터라, 왠지 힐링 드라마 ‘정신아’에서도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정작 뚜껑을 연 ‘정신아’는 시청자의 예상과 어긋난다.

장률은 오랫동안 민들레(이이담 분) 간호사를 흠모하는 정신과 의사 황여환으로 분했다. 자신의 업무에는 프로페셔널한 편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꽝인 인물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진심으로 다가가며 민들레의 마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진짜 어른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려낸다.

장률은 “제가 장르적 특성이 짙은 작품에서 강한 연기를 했었다. 개인적으론 황여환처럼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인물에 갈증이 있었다. 자기 사랑을 표현하는 것엔 서툴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애틋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없는 막내아들을 더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쁘고 밝은 에너지 가진 이이담, 덕분에 사랑 받는 커플 돼”

황여환의 가족은 의사 엘리트 집안이다. 아버지는 황여환이 근무하는 명신대학교 고위직이다. 민들레는 황여환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빠르게 거부한다. “날 만나는 건 똥 밟는 것”이라며 진심으로 구애하는 황여환을 외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자본이 계급을 나눈다고 해도, 의사와 간호사가 절대 못 만날 정도로 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민들레의 어머니는 도박 중독자로 딸의 안정적인 직업을 이용해 큰 규모의 대출을 받은 사람이다. 민들레는 그 빚을 갚기 벅차다. 그런 딸의 마음도 모르고 어머니는 조금의 미안함도 없다.

“여환이는 이해가 안 됐을 거예요. 들레가 병동에서 에이스고, 외모도 예쁘잖아요. 그런데 자신을 두고 ‘똥 밟는 거’라는 자존감 낮은 발언을 한 다는 게. 이후에 어머니를 만나고 알게 돼죠. 여환이도 아마 복잡하지 않았을까요?”

여환은 “어머니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들레 옆에서 자유를 찾아주겠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들레 어머니에게도 일침을 날린다.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엿보인다.

“많은 고심이 있었겠죠. 개인적으로 ‘엄마 버려요’라는 대사가 어려웠어요. 어떻게 천륜을 저버리라는 말을 해요. 여환이 들레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주의 깊이 생각했어요. 들레를 위해 따뜻하면서도 모질면서도 통쾌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여환의 노력과 용기가 그 순간만큼은 빛나길 바랐어요.”

시청자들은 대체로 러브라인이 나오는 두 인물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감상한다. 성숙할 뿐 아니라 타인을 향한 배려도 넘치는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유독 더 응원하게 된다. 끝까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담 배우 덕분일지도요. 정말 밝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예요. 실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현장에선 그렇게 텐션이 낮은 얼굴을 하고 있죠. 그래서 이담씨의 실제 모습처럼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내 마음에 깊게 남은 ‘정신아’, 사랑의 개념도 다시 써”

이재규 감독을 비롯해 박보영과 연우진 등 ‘정신아’ 배우들은 하나 같이 작품을 통해 마음을 씻었다고 입을 모은다. 다들 촬영하면서 사람에 대해 배우고 자신을 알게 돼 즐거웠다고 했다. 누구 한 명 악역 없이 힘든 이 세상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우들의 마음부터 치유했나 보다. 장률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아’가 제 마음에 깊게 남았나 봐요. 워낙 좋은 동료들과 작업했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연기 생활과 현장에서의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많이 배웠어요. 가끔 저는 저를 옥죌 때가 있어요. 스스로 프레스를 많이 줘요. 선배님들이 그런 걸 아셨는지 마음에 새길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여환이를 연기하면서 사랑에 대한 개념도 다시 쓰게 됐어요. 진짜 사랑을 배운 거죠.”

‘마이네임’에서 강렬하게 등장한 후 ‘몸값’에선 광기를 표현했고, ‘정신아’에선 누구보다 멋진 남자를 그려냈다.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오고 간다. 업계에선 장률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제가 악역을 맡았을 때도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고 연기해요. 선과 악이라는 게 동전 뒤집기랑 비슷해요. 착한 면이 있는 사람이 더 악하게 표현했을 때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여환이는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하려고 했죠. 관계 속에서 은은하게 풍기게끔요. 가족 같은 병동 분위기 속에서 여환의 인간미가 느껴졌으면 했어요.”

이미지의 큰 반전을 준 장률의 다음 작품은 티빙 ‘춘화연애담’이다. 고아라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진취적인 조선 선비의 로맨스를 다룬다.

“‘춘화연애담’에서도 선한 인물이에요. 코믹 요소도 있어요. 지금 열심히 촬영 중이에요. 저는 모든 장르를 다 잘 소화하고 싶어요. 그런 배우가 돼야 더 좋고 많은 작품과 만날 수 있잖아요. 기술적으로도 태도 면에서도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