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꽤 많은 배우가 감독 미팅 자리에서 만나면 처음 하는 얘기가 ‘같이 출연하는 A배우는 얼마 받아요?’예요. 그 이상 더 달라는 거죠. 출연료가 이렇게 결정돼요.”
한 영화감독이 토로한 말이다. 모두를 다 그렇게 지칭할 수 없겠지만, 대다수 유명 배우들이 다른 배우의 몸값에 맞춰 자기 출연료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한 배우가 몸값을 띄우면 전반적으로 업계 출연료가 모두 오르게 된다.
지난 2019년, 넷플릭스가 ‘킹덤’으로 한국 드라마 시장에 진출한지 5년이 지났다. 그간 한국 드라마 지형은 크게 기울어졌다. 글로벌 OTT플랫폼은 높은 출연료와 제작 물량공세를 하는 반면 광고시장이 위축된 국내 방송사 플랫폼은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다.
4~5년 전 회차당 8억원 하던 드라마 제작비는 글로벌 OTT진출 이후 3배 이상 상승했다. 배우들은 OTT에서 받던 몸값 그대로 국내 방송사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출연료와 제작비가 감당되지 않아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수를 줄였음에도, 상황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제작사와 방송사, 방송사 내 자회사인 주요 제작사와 의견을 합치는 자리를 가졌다. 해당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이 지난달 25일 보도자료로 배포됐다. 일부 A급 배우들이 몸값을 너무 높여 드라마 산업이 위태로워졌다는 게 요지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12일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단순히 주연급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연들도 OTT 플랫폼 작품에 출연하면 3배 이상 상승한 출연료를 달라고 한다. 전체적인 비용이 올라가면서 편성이 줄어들었음에도, 이러한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과 2020년만 해도 1억 출연료를 받는 배우가 흔치 않았는데, 요즘에는 대체로 억대 몸값이다. 아직 드라마 시장이 그 정도가 아니다. 배우들에게 같이 상생하는 방안을 말하고 싶었다”며 “방송사까지 함께 한 이유는, 그간 방송사가 스타 마케팅을 펼쳐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생각해서다.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은 아니다. 모두가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드라마가 흥행하더라도 주연급 배우 한 명이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백 명이 힘을 합쳐 만든 드라마인데 오롯이 정상급 배우에게만 너무 큰 수혜가 돌아간다는 데서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B 대표는 “만약 100억원의 드라마를 만들면 20%에서 30%를 한 명의 배우가 가져간다. 그리고 105억원의 수익을 내면 남은 5억원을 두고 몇 년 동안 고생한 방송사와 제작사가 나눠 갖는다”라며 “이런 구조라면 산업적으로 투자를 받는 선순환구조가 나올 수 없다. 올해와 내년 사이에 도산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이러다 다 죽게 된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출연료는 시장 논리로 형성된다. 배우들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출연료가 책정되기 마련이다. 재능에 비해 너무 많은 출연료가 책정된 배우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사들은 미디어업계가 시장논리라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C는 “시장논리로 형성된 가격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한 번 올라간 몸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물의를 일으키는 수준의 잘못이 아니면 몸값은 유지된다”며 “이 현상을 타개할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위기 상황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잘 모른다. 시청자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작사가 모였다. 배우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고 말했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요즘에는 한 편만 성공해도 바로 몸값을 올린다. 10년 넘게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랑 똑같이 받으려고 한다. 욕심이 과한 행보가 많다. 남이 올렸다고 해서 바로 그것에 따라가는 세태는 바로 잡혔으면 한다. 딱히 방법이 없어 읍소하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다음 절차는 없다. 제작사가 다시 협의해 건강한 업계를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