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내부에서 뽑는다면 당연히 이범호 코치가 될 것이다.”

야구인들의 전망은 한결같았다. 초유의 캠프 출국길 감독 해임을 겪은 KIA의 새 사령탑을 예상해달라는 질문에 내부 코치 중 결정을 내린다면 이범호 코치가 된다고 내다봤다. 현역 시절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갔던 모습.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차근차근 감독으로 올라서는 단계를 밟는 점을 강조하며 이 코치가 적임자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KIA가 13일 이범호 타격 코치를 11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이 코치는 호주 캠프 중 타격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진해 지휘봉을 잡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

KIA 구단은 급박한 시점에서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온 지도자를 선택하는 게 과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외부 지도자의 경우 최소 1년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막강 전력을 갖춘 우승 적기를 놓칠 수 없다는 KIA 구단의 의중이 내부 지도자, 이 코치 선임을 통해 드러났다.

사실 관건은 시기였다. 즉 언젠가는 KIA 감독을 맡을 이 코치였다. 그만큼 구단 내부 평가가 좋다. 현역 시절 늘 성실하고 긍정적인 국가대표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KIA는 이 감독이 지도자로서도 재능을 만개하도록 해외 연수를 도왔다.

2019년 은퇴 후 바로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캠프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20년에는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에서도 코치 연수에 임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마이너리그 시즌이 취소되면서 캠프 기간에만 미국에 머물렀으나 KIA 구단은 이 코치를 향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이 감독에게 프런트 업무를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2021년에는 2군 총괄 코치, 2022년부터는 1군 타격 코치를 맡겼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막강한 클러치 히터였다. 중요한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최고의 결과를 냈다. KBO리그 역대 최다 17개의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승리를 확정 짓거나 승부를 뒤집는 상황에서 유독 빛났다.

KIA가 21세기 들어 가장 완벽한 전력을 자랑했던 2017년에도 그랬다. 당시 만 36세 베테랑이었던 이 감독은 2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시즌 타율은 0.272이었는데 득점권 타율은 0.317로 훌쩍 올라갔다.

당해 통합 우승을 달성한 이 감독은 대표팀 선수로서도 굵직한 활약을 펼쳤다. 2006,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야구 르네상스를 열었다. 현역 시절 승부사가 지도자로서 다시 승부처를 맞이한다.

경험을 지적하는 시선도 있다. 만 42세로 21세기 선임된 감독 중 최연소에 가깝다. 21세기 이 감독보다 젊은 나이에 감독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당시 만 41세)밖에 없다. 그런데 경험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선 감독은 삼성에서 두 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2012년 LG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 감독, 2013년 넥센 사령탑으로 올라선 염경엽 감독 모두 40대 초반 팀을 맡아 성공을 이뤘다.

셋 다 감독 선임에 앞서 코치로서 일찍이 선수를 파악했다. 선수단을 알고 구단 시스템을 체험해온 만큼 수정 보안도 순조로웠다. 이 감독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2017년처럼 막강 타선과 높은 마운드를 앞세워 다시 정상을 노릴 수 있는 KIA다.

이 감독은 사령탑 부임과 동시에 만루 찬스에 섰다. 현역 시절 꾸준히 쏘아 올렸던 만루홈런을 감독 지휘봉을 잡고 다시 장전한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