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삼성 상대로 광주서 첫 헹가래
타이거즈 11차례 KS서 모두 우승 장식
국민 분열·통합 때마다 정상에 우뚝 서
트로피 한 더즌 완성, 축가는 ‘남행열차’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한 타스(dozen(12개짜리 한 묶음)의 비표준어로, 주로 일본식 표현) 채웁시다!”
벌써 7년 전이다. KIA의 열한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축승회 자리에서 타이거즈 대표이사가 “연필도 12자루면 한 타스(더즌)라고 한다. 이제 11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으니,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 한 타스를 목표로 삼아 정진하자”고 외쳤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고, 이어 박수소리가 축승회장을 뒤덮었다. “내년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임새가 산발적으로 들렸고, “타이거즈 우승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로 이어졌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우승트로피 한 더즌을 채우는 건, KBO리그에서는 최초의 일이다. 일찌감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사명을 KIA로 바꾼 이래 세 번의 우승을 모두 통합우승으로 장식하려는 KIA가 ‘안방’ 광주에서 축배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28일부터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챔필)에서 치르는 한국시리즈(KS) 5~7차전 중 한 경기만 잡으면, 12번째 KS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는다. 시리즈 전적 3승 1패 뒤 내리 3연패 한 사례가 없진 않지만, KS 진출 후 한 번 도 패권을 놓친적 없는 팀은 타이거즈가 유일하다.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는 이유다.
더구나 올해는 홈인 광주에서 우승 축배를 들 기회를 잡아, 기대감이 더 크다. 재미있는 점은 1987년이 광주에서 KS 우승 기쁨을 누린 마지막 해였는데, 당시 파트너도 삼성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난 해에, 민주화 성지로 불리는 광주에서 KS 우승을 확정한 것만으로도 광주 시민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었다.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내리 4연속시즌 KS 우승으로 80년대 최강팀이자 역대 최다 우승 타이틀홀더로 등극했다.
타이거즈의 4연속시즌 KS 우승은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평가됐지만, 삼성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통합우승을 차지해 어깨를 나란히했다. KBO리그에서 ‘유이한 기록’을 가진 두 팀이 KS에서 자웅을 겨루는 것도 올드팬에게는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31년 만의 맞대결이자 37년 만에 광주에서 KS를 끝낸다는 건 정치·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야구와 정치를 같은 프레임에 넣을 수는 없지만, 1987년과 2024년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있다.
참고로 군부독재(1983), 민주화(1987), 아시안게임(1986), 올림픽(1988), 문민정부(1993), 외환위기(IMF·1997) 대통령 파면(2017) 등 타이거즈의 KS 우승은 국민의 열망을 반영했다.
양팀을 끌어가는 주축들의 숨겨진 스토리도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KIA 이범호 감독과 손승락 수석코치는 대구 출신이다. 4차전에서는 허리통증으로 결장했지만, 이른바 ‘삼성왕조’를 이끈 최형우는 삼성 출신이다. 고향 혹은 친정팀을 상대로 우승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할 만하다.
삼성 박진만 감독, 정대현 투수코치는 타이거즈와 악연으로 얽혀있다. 박 감독은 현대시절 생애 첫 우승 문턱에서 KIA에 덜미를 잡혔다. SK 왕조의 ‘여왕벌’로 군림한 정대현 역시 타이거즈를 상대로는 우승한 기억이 없다.
징크스와 전통은 언제나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