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감독에게 중간은 없다. 성공 아니면 실패다. 그래서 감독에게도 복이 필요하다. 좋은 전력을 받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면, 둘도 없는 복이다.

KIA 11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범호 감독이 그렇다. 모두가 우승권 전력으로 꼽는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바로 전날까지 타격 코치로 야수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순식간에 팀 전체를 총괄한다. 갑작스럽게 큰 변화와 마주했고 선수단 모두를 책임지는 자리에 섰다.

부담을 느낄 수 있다. 42세 젊은 지도자. 해외 연수를 제외하면 코치 경력도 3년에 불과하다. 막내 코치에 가까운데 순식간에 선수는 물론 코치도 지휘한다. KIA 구단이 고민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언젠가는 팀을 이끌 이 감독이지만 너무 빨리 좋은 카드를 소진하는 데에 따른 리스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플랜A는 이 감독이 더 경험을 쌓고 사령탑으로 완전히 준비를 마쳤을 때 지휘봉을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팀 내부 사정도 고려했다. KIA는 올해가 이른바 우승 적기다. 우승을 응시하며 캠프에 돌입하는데 감독 교체라는 초대형 변수와 마주했다. 흔들릴 수 있는 선수단을 신속하게 다잡을 수 있는 인물을 2주가량 물색했고, 이 감독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사령탑을 찾는 게 사령탑 공백과 교체에 따른 혼란이나 과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은 물론, 지도자로서도 늘 방향이 뚜렷했다. 선수단을 아우를 수 있는 카리스마와 친화력도 두루 겸비했다. 감독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질을 지녔다. 그 기질이 빠르게 선수단에 퍼져나가기를 기대하는 KIA다.

감독 홀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팀 전력이 뛰어나야 감독도 역량을 발휘한다. 열심히 전략을 짜고 전술을 펼치려 해도 이를 실행하는 것은 선수다. 요리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재료가 나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이 부분에 있어 이 감독은 행운을 손에 쥔 채 지휘봉을 잡았다. 그라운드 위에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다양하게 겸비했다. 리그 최고 상위 타선에 마운드에는 무한한 재능을 자랑하는 영건이 포진했다.

14년 동안 KIA 유니폼을 입었으니 이 감독과 선수들 모두 서로를 잘 안다. 초보 감독이지만 팀 안에서는 절대 초보가 아니다. 7년 전 현역 선수로서 통합우승을 달성했는데 이제는 감독으로 정상을 응시한다.

13일 사령탑으로서 처음 선수단과 마주한 후 “화려한 멤버 때문에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말씀도 하시는데, 선수가 없어 고민인 것보다는 좋지 않으냐”며 ‘긍정의 힘’을 강조한 이 감독이다.

그가 결과를 내면 KIA 구단으로서도 행운이다. 오랫동안 팀을 맡길 수 있는 젊은 사령탑을 얻는다. 늘 감독 교체에 따른 홍역을 앓아온 KIA다. 이제는 계약 기간을 준수하며 길게 집권하는 감독이 나올 때도 됐다.

감독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 구단 시스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감독은 해외리그와 코치 연수로 선진 야구를 체험했다. 스카우트로 짧지만 프런트 업무도 경험했다. 선수단 수장이면서 프런트와 가교 역할도 기대된다. 준비된 사령탑 이 감독이 새로운 KIA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