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선발 투수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기전에서 특히 그렇다. 타고투저 흐름이어도 강한 선발 투수가 경기 흐름을 만들고 팀 승리를 이끄는 것은 변치 않은 야구의 속성이다.

지난주 KIA가 그랬다. 주 2회 등판한 에이스와 새로 합류한 선발이 나란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정상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은 것은 물론, 향후 포스트시즌에서도 믿을 만한 원투 펀치를 보유했음을 알렸다.

시작은 제임스 네일이었다. 화요일과 일요일, 주 2회 등판이 잡힌 네일은 총합 11이닝 무실점했다. 지난 7일 광주 KT전 3.2이닝 조기 강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최고의 결과를 냈다. 13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5이닝 무실점, 18일 잠실 LG전에서는 11이닝 무실점했다.

결과만큼 과정도 의미가 컸다. 다소 떨어진 듯싶었던 구위와 제구가 정상궤도에 올랐다. 주무기 투심 패스트볼과 스위퍼의 움직임이 시즌 초반으로 돌아왔다. LG전 승리로 11승째를 올린 네일은 가족의 한국 방문이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족이 한국에 온 이후 연승을 이어갔다. 가족과 함께 있다 보니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다. 팀 모두 가족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해줘서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미소 지었다. 네일의 아버지와 형, 형수가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한국을 찾았다.

5월까지 네일은 평균자책점 1.64로 괴력을 발휘했다. 올시즌 넘버원 투수로 올라섰고 KIA 또한 네일을 앞세워 시즌 초반 러시를 이뤘다. 그러나 6월 평균자책점 4.40, 7월 평균자책점 4.33으로 주춤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돌지 않은 점. 그리고 모든 투수가 힘들어하는 무더위 등이 네일이 고전하는 요소로 꼽혔다. 네일 등판 시 유독 야수진 수비 에러가 많은 것도 불운으로 작용했다. 올시즌 네일의 실점(69점)과 자책점(42점) 차이는 무려 27점에 달한다.

핑계는 없었다. 네일은 코칭스태프의 휴식 권유에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았다. 그리고 8월에 다시 일어섰다. 8월 4경기 평균자책점 0.87로 에이스 위용을 되찾았다. 프로 커리어 최다인 144.1이닝을 소화하며 체력 이슈도 지웠다. 네일의 이전 최다 이닝은 2018년 트리플A 135.2이닝이다.

새로 합류한 왼손 에릭 라우어도 저력을 증명했다. KBO리그 데뷔전이었던 지난 11일 광주 삼성전에서 3.1이닝 4실점으로 고전했다. 그러나 다음 경기 LG를 상대로 5이닝 1실점으로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KIA 이범호 감독은 “라우어가 입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시차 적응도 다 안 됐을 텐데 미안했다”며 “책임감이 강한 선수인 것 같다. 사실 요즘 투수들은 100개가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투구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라우어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라우어는 17일 경기에서 4회까지 투구수 97개를 기록했다. 선발 100개 이하 투구가 규율 아닌 규율이 된 현대 야구에서 교체가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라우어는 강력하게 5회에도 등판할 것을 요청했다. 5회 마운드에 섰고 투구수 108개로 선발승을 올렸다.

이 감독은 “계속 선발을 해왔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도 좋은 투수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첫 미팅부터 요즘 투수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큰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 던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고 라우어를 향한 기대를 전했다.

네일과 달리 라우어는 빅리그에서 자신의 자리가 확고했던 풀타임 선발 투수였다. 빅리그 통산 선발 등판만 111경기다. 바로 지난해까지도 밀워키에서 10경기 선발 등판했다. 적응 문제만 해결하면 KBO리그 정복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한국시리즈 로테이션 청사진이 그려지는 KIA다. 올해 다시 국내 최고 선발로 활약하는 양현종까지 상위 선발 라인이 굳건하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