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1. 비서 유은호(이준혁 분)가 강지윤(한지민 분) 대표와 찾은 편의점. 출출함을 느껴 급히 사발면 두 개를 골랐다. 그냥 끓이면 될 것을 소시지로 플레이팅을 하고, 치츠를 살살 올려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일개 라면이 요리가 되는 순간이다. “뭘 이렇게 유난을 떠냐”는 말에 “맛 있는 거 먹으면 위로가 되잖아요. 배가 채워지면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고”라고 받는다. 한 입 먹어본 강 대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를 묶고 본격적으로 먹어보려는데, 머리 끈이 없다. 유은호는 안쪽 주머니에서 머리 끈을 꺼냈다. 강 대표의 젓가락이 분주해졌다.
#2. 도저히 손을 어떻게 대야 할지 모르겠는 강지윤 대표실. 마음은 급하고 일에만 너무 몰두한 탓에 가방은 소파에 집어 던지기 일쑤다. 당기는 것밖에 안 되는 문엔 늘 머리를 부딪힌다. 며칠 유심히 지켜본 유은호는 소파 옆에 가방걸이를 두고, 모든 서류는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했다. 문도 미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제멋대로 정리하면 어떡하냐”는 말도 나올 법한데, 워낙 깔끔히 정리가 돼 있어 강 대표 얼굴엔 미소만 번졌다.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새로운 형태의 남성 판타지를 채우는 작품이다. 그 중심엔 유은호가 있다. 유은호는 상대가 말하기 전 그가 원하는 것을 미리 캐치하고 위로하고 풀어주는 인물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알아서 잘 깔끔하고 딱 센스있게’ 하는 타입이다. 성격이 무난하고 밝은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강지윤의 마음마저 열어젖힌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비서는 여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유은호와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셈이다. 꼭 말하지 않아도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꺼내는 모습은 남자 시청자에게도 감동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 사수에게 모욕당한 강 대표에게 산책을 추천하고 차분히 걷는다. 굳이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걷는다. 질문이 상처를 헤집어놓는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강 대표뿐 아니라 퍼플즈 내 모든 직원과 소통하고 위로한다. 피자를 사기도 하고, 피로회복제 한 병으로도 마음을 달래준다. 인상 찡그리며 살아온 사내 직원들은 유은호 입사 이후로 활기를 되찾았다. 완벽한 비서를 넘는 완성형 인간이다.
주로 스릴러 장르에서 활약한 이준혁은 물 만난 듯 연기를 펼치고 있다. 평소 성격 좋기로 유명한 이준혁은 매 순간 유은호의 얼굴과 표정, 이미지를 만드는 중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어른의 형태다. 절대적 선한 인간의 모습으로 따뜻하면서 유쾌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여성들이 기다려온 남성 판타지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반응은 뜨겁다. 4회 만에 시청률 11.5%(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겼다. 여자 시청자는 물론 남자 시청자들도 유은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알잘깔딱센’의 의인화에 성공한 ‘나의 완벽한 비서’의 승승장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일 잘하는 SBS 드라마는 2025년 시작부터 밝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