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호, 한국오픈 최초 ‘예선 통과자’ 우승
난코스 우정힐스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아내 덕분에 ‘예선 출전’→우승까지 질주
“신기할 정도로 모든 기운이 왔네요”

[스포츠서울 | 천안=김민규 기자] “아내가 대리기사 안 불러줬으면 나는 여기 없었을 겁니다.”
마지막 퍼트가 홀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양지호(37·스릭슨)는 고개를 숙였다. 예선 18위로 시작한 기적 같은 일주일, ‘무럭이(태명)’와 아내를 떠올리며 버텨낸 시간들이 한꺼번에 눈물로 쏟아졌다.
양지호가 코오롱 제68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오픈 역사상 최초의 ‘예선 통과자 우승’이라는 전설을 썼다. 그것도 1라운드부터 최종일까지 단 한 번도 단독 선두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정석이었다. 이 같은 드라마의 시작엔 ‘10만원짜리 대리운전’이 있었다.
양지호는 24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럽(파71·7361야드)에서 열린 최종 4라운드에서 5오버파 74타를 쳤지만, 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로 정상에 올랐다. 2위 찰리 린드(스웨덴)를 4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불과 2주 전만 해도 그는 한국오픈 출전을 포기하려 했다. 지난 10일 전남 영암에서 열린 KPGA 파운더스컵 최종 4라운드 챔피언조에서 무너진 뒤 몸도, 마음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경기를 마치고 용인 집까지 4시간 넘게 운전해 돌아가야 했고, 다음 날 곧바로 춘전에서 한국오픈 예선을 치러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우승 인터뷰에 나선 양지호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때 그의 등을 ‘토닥’인 건 아내 김유정 씨였다. 아내는 대리기사를 불렀다. 양지호는 차 뒷자리에서 휴식을 청하며 춘천 라비에벨 듄스코스로 향했다.
“대리비는 10만원이 나왔다”며 웃은 그는 “기사님 덕분에 푹 쉬면서 갔다. 아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우승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그렇게 겨우 나선 예선. 통과 순위는 18위였다. 누구도 그가 우정힐스 정상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지호는 첫날부터 선두를 달렸다. 난코스 우정힐스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벙커 턱에서 친 샷이 그대로 이글로 연결됐고, 위기의 순간마다 칩인 버디가 터졌다.
그는 “정말 운이 따랐다. 신기할 정도로 모든 기운이 나에게 온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양지호는 이번 대회 내내 가장 강한 멘탈을 보여줬다.
최종 라운드 아침, 그는 긴장감에 밥조차 먹지 못했다. 바나나만 8개를 먹었다. 양지호는 “아침부터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초반에 무너지면 어쩌나 싶어 정말 스트레스가 컸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끝내 버텼다. 그 원동력은 가족이다. 현재 아내는 임신 중이다. 양지호는 오는 겨울 태어날 무럭이와 아내를 떠올리며 버텼다.

이번 우승은 단순한 트로피 이상의 의미다. 양지호는 우승 상금 5억원과 특별 보너스 2억원까지 총 7억원을 받았다. KPGA 투어 5년 시드와 아시안투어 시드, 그리고 디오픈 챔피언십 출전권까지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불안한 선수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컸다. 양지호는 “시드를 잃으면 아이에게 투어 뛰는 모습을 못 보여줄 수도 있었다”며 “이제는 5년 동안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가장의 미소도 보였다. “상금은 우선 저축해서 아이 뒷바라지해야죠. 아내가 집이 좁다고 했는데, 이사 자금으로 보태야 할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km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