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백수아파트’(연출 이루다)는 신인 감독답지 않은 서사 구조와 편집이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세상 오만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백수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소재로 시작한다. 이런 ‘오지라퍼’ 캐릭터를 ‘경반장’ 경수진이 찰떡으로 소화하면서 재미는 더욱 배가됐다.
26일 개봉한 영화 ‘백수아파트’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백수 거울(경수진 분)이 새벽 4시마다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층간 소음의 정체를 찾기 위해 이웃들을 조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코믹 추적극이다.
짜임새 있는 조합이 좋다. “유쾌함과 따뜻함의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는 런던한국영화제 평가만큼이나 영화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개성 넘치는 아파트 주민들과 결합해 러닝타임(98분)동안 지루할 틈 없이 끌고 간다. 거울이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6개월간 층간 소음의 원인을 추적하고, 마침내 그 원인이 아파트 재건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게 된다. 직업은 없지만, 알아서 할 일을 만들어야 하는 동네 반장에게는 이만한 일이 없다.

영화는 한국의 복도식 아파트라는 배경도 잘 녹여냈다. 계단식 아파트와 달리 같은 층수에 누가 사는지 알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나오는 웃음벨을 잘 장치해 뒀다. 데시벨을 토대로 층간 소음의 발원지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의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시퀀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다. 뒷걸음질 치며 신이 난 거울을 ‘트래킹 샷’(카메라가 피사체와 같은 속도·방향으로 따라가는 촬영 기법)으로 촬영한 장면에선 거울의 개구쟁이 같은 캐릭터가 잘 살아난다.
캐릭터도 잘 나왔다. 극 전체를 이끌고 가는 경수진의 힘이 돋보인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힐끗힐끗 사람을 쳐다보며 나오는 ‘찐바이브’는 경수진이 연기했기에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이미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경반장’으로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셀프 인테리어로 집을 꾸미는 것은 물론 친구 집에 커튼 시공까지는 하는 척척 반장의 모습을 선보였다. 부동산을 구할 때 지역적 위치부터 냉·난방기 옵션 유무, 화장실의 위치 등 예리하면서 꼼꼼한 면모를 전수했다. ‘아파트’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에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

고규필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영화 ‘범죄도시3’(2023)에서 초롱이로 보여준 외강내유의 캐릭터와 달리 처음부터 한없이 연약한 존재로 나온다. 빚에 쪼들리는 실직한 회계사인 경석을 연기했다.
처음부터 맞는 얼굴로 시작해 마지막까지도 얻어터지고 찌그러진다. 왜 고규필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뿔테 안경을 써도, 구찌 티셔츠에 금목걸이를 둘러도 스크린에 나올 때 시선이 집중된다. 고규필이 가진 남다른 배역 소화력과 경수진의 추리력이 결합할 때 나오는 쾌감은 남다르다.
다만 영화는 거울이 이런 오지라퍼가 된 개연성은 다소 느슨하다. 거울이 조카의 죽음으로 인한 망상 증세, 그로 인해 온갖 일에 집착하게 됐다는 인과 관계가 썩 훌륭하지는 않다. 귀여운 아역이 등장할 때마다 ‘아빠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렇다고 설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故 김주혁의 영화 ‘홍반장’(2004)처럼 날 때부터 오지라퍼임을 보여주는 게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