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제가 ‘미키 17’에서 옹졸한 독재자를 연기했습니다. 3년 전 촬영할 때는 ‘이건 너무 오버야’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보니 너무 조심스럽게 연기한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처럼 연기했더라고요.” (마크 러팔로)

할리우드 배우 마크 러팔로가 미국 내 유명 토크쇼 ‘지미 팰런쇼’에서 한 말이다. 봉준호 감독 연출작 ‘미키 17’에서 독재자 마셜을 연기한 것에 대한 감상평이다. 해당 발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꼭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시대 독재자들의 얼굴이 엿보인다. 이탈리아 기자는 봉 감독에게 “무솔리니를 염두에 뒀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12.3 계엄으로 복잡해진 국내 사회와 정확히 맞물린다. 어디에 대입해도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놀라움이 있다.

SF 장르 ‘미키 17’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기존 SF 공식과 달리 정치와 사회,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SF 장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액션이나 처절한 전투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SF 정치 블랙코미디라 일컬을만 하다.

“노동의 귀천은 어디까지인가?” “인간 간의 계급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인간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독재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복제인간의 정체성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등 심오하고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 가득 담겨 있다. 봉준호 감독이 그간 영화에서 담아온 질문이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펼쳐진다.

영화 내내 도파민이 터질만한 딱히 큰 사건이 없어 지루하게 느꼈다는 관객들도 더러 있지만, 현재 사회에 기막히게 맞물린 영화의 이야기에 극단적으로 재밌다는 반응도 많다. 매우 어려운 질문들이 있음에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건 봉 감독 특유의 유쾌한 코미디가 버무려져서다. 최근 극장에 걸린 영화의 수준에 비해 월등히 완성도가 좋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국내에서는 지난 주말에만 130만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다.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겼다. 예매율은 4일 오전 45.1%(7만6000여장)로 앞으로 꾸준히 ‘미키 17’ 흥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