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시작은 성공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처였다. 아덴 조는 자신의 커리어를 설명하기전 어린 시절을 꺼냈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보다 먼저 등장하는 기억은 텍사스에서 겪은 인종차별이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2세. 그는 자연스럽게 두 문화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시선과 폭력을 마주해야 했다.
“미국에서 자라면서 정말 많은 일을 겪었어요. 말로만 듣던 차별이 아니라, 실제로 맞기도 했고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여러 번 있었죠. 미국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 늘 따라다녔어요. 그때는 내가 뭔가 부족해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건가,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시간이 지나서야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이고 싶어서였다. 화면 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직접 증명하고 싶었다.
“아시아계 배우가 주인공으로 서는 것만으로도 인식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죠.”
그는 MTV 드라마 ‘틴 울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덴 조는 캐릭터 설정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배역을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배경이 억지스럽지 않게 녹아들 수 있도록 제작진과 논의를 이어갔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여러 번 거절했어요. 그런데 제작진이 계속 이야기하더라고요.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딤섬 장면을 추석 음식으로 바꾸고, 잡채나 송편을 넣으려고 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진짜처럼 보이고 싶었죠.”

그렇게 조금씩 쌓아온 시간이 한 작품에서 결정적으로 맞물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였다. 아덴 조는 주인공 ‘루미’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좋은 제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당시 그는 번아웃 상태였다. 20년 가까이 연기를 해오며 지쳐 있었고, 한동안은 배우 일을 멈춘 채 제작과 기획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신났어요.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K팝도 좋아하는데, 한국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은 처음이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왜 연기를 시작했는지조차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루미를 녹음하면서 그 이유가 다시 떠올랐죠. ‘내가 사랑했던 게 이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루미는 강한 리더이면서도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아덴 조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겹쳐냈다. 작품 공개 이후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특히 한국에서의 반향은 그에게 낯설 만큼 뜨거웠다.
“드라마틱한 감정은 오히려 쉬웠어요. 힘들었던 건 밝고 귀여운 순간들이었죠. 쿨해야 하는데 귀엽고, 강한데 솔직해야 했거든요. 그 균형이 정말 어려웠어요. 한국에서 이렇게 관심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어요. 인터뷰 제안도 오고, 사람들이 루미 이야기를 해주는데 솔직히 많이 뿌듯했죠. 교포로 살면서 늘 마음 한편에 감정이 있었거든요.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요.”
이처럼 커리어와 감정이 다시 궤도에 오른 시점, 아덴 조의 이름은 또 다른 이유로 화제에 올랐다. 최근 차은우의 탈세 의혹과 관련한 SNS 댓글 논란이었다. 아덴 조는 차은우의 입장문에 응원의 댓글을 남겼고, 이 짧은 문장은 곧 여론의 중심에 섰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직접 선을 그었다.
“개인적인 친분에서 나온 위로였어요. 사안에 대해 판단하거나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죠. 그런데 그 마음이 공적인 공간에서 다른 의미로 읽히더라고요. 사적인 감정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앞으로는 더 신중해져야겠죠.”
아덴 조에게 목표는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에 가까웠다. 상처를 지나온 시간도, 다시 연기를 선택한 순간도 모두 그 방향 위에 놓여 있었다. 거창한 성취나 수치가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서사로 전환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제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보다, 왜 그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내가 겪어온 감정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khd998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