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FST 4강서 유럽 G2에 0-3 패배

2020 월즈 이후 1980일 만의 참패

상처 입은 1황, 이제 더 강해질 시간

[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늘 이길 것 같던 팀도, 국제 무대에서는 한순간에 멈출 수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LCK ‘1황’ 젠지가 마주한 현실이 딱 그랬다.

2026시즌 첫 시작인 LCK컵을 전승으로 밀어붙이며 “올해도 젠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국내에선 흔들림이 없었고, 국제 대회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FST)에서도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다. 실제 초반 흐름도 그랬다.

중국(LPL) 징동 게이밍에 이어 북미 대표 라이온까지 세트 스코어 3-0으로 제압하며, 젠지는 자신들이 왜 ‘1황’으로 불리는지 보여줬다. 그러나 4강에서 만난 유럽의 맹주 G2 e스포츠에 발목이 잡혔다. 그것도 0-3 완패다. 이로써 젠지는 첫 FST를 마감했다. 젠지가 G2에 완패를 당한 것은 2020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8강 이후 1980일 만이다.

충격적인 건 패배의 결과만이 아니다. 내용이 더 뼈아팠다. 1세트부터 G2는 젠지가 풀어가고자 했던 설계를 정면으로 부쉈다. 젠지가 애쉬, 세라핀으로 바텀 주도권을 쥐겠다는 메시지를 던지자, G2는 갱킹과 합류 타이밍으로 그 바텀을 먼저 무너뜨렸다. 바텀 균열은 다른 라인까지 번졌고, 패배했다.

2세트에선 젠지가 탑 베인이라는 조커 픽을 꺼냈지만, G2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타 집중력과 오브젝트 운영에서 더 날카로웠다. 3세트에선 G2가 코그모 조합으로 젠지를 압도했고, 시리즈는 끝내 단 한 번도 젠지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세트 스코어 0-3, 킬 스코어도 크게 밀린 일방적 패배였다.

이번 패배는 젠지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LCK 전체가 받아들여야 할 시그널이다. 국내에서 정답처럼 보이던 선택이 국제전에선 더 이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다.

G2는 오래전부터 ‘LCK 킬러’로 불렸다. 2019년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과 롤드컵 결승 진출 과정에서 LCK 팀들을 연파하며, 유럽 팀 특유의 변칙성과 공격성을 각인시킨 팀이다. 이번에도 그 본능이 깨어났다. 밴픽은 독특했지만 즉흥적이지 않았고, 운영은 과감했지만 무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패배를 지나치게 비극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 맞은 게 다행일 수도 있다. FST는 올시즌 출발점에 가깝다. 이름값은 국제대회지만, 성격으로 보면 정규시즌과 MSI, 그리고 더 멀리는 롤드컵을 향해 팀의 한계를 먼저 확인하는 무대다.

젠지 입장에선 너무 잘 풀리던 흐름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국내에서 전승, 플레이오프 무패, 국제전 초반 강세까지 이어지면 팀은 자신의 방식이 모든 무대에서 통한다고 믿기 쉽다는 얘기다. 그런데 G2전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깼다. 상대가 바텀을 집요하게 흔들 때 어떻게 버틸 것인지, 조커 픽이 막혔을 때 어떤 플랜B가 있는지, 교전 설계가 꼬일 때 누가 판을 다시 짤 것인지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강팀은 패배하지 않는 팀이 아니라, 패배를 통해 버전을 올리는 팀이다. 젠지로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번 패배로 자신들의 ‘국내용 완성도’와 ‘국제전용 완성도’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간극을 얼마나 빨리 메우느냐가 다음 무대를 결정할 수 있다.

특히 밴픽 유연성, 바텀 주도권이 무너졌을 때의 복구 능력, 오브젝트를 둘러싼 한타 설계는 반드시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번 4강전은 단순히 손이 안 맞았던 하루가 아니라, 메타 대응과 경기 운영의 폭이 아직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경고장인 셈이다.

LCK 팬들 입장에선 분명 자존심 상하는 결과다. G2가 BNK 피어엑스에 이어 젠지까지 연달아 3-0으로 잡아내며 결승에 오른 장면은, 오래전 국제전 악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시즌은 길고, 진짜 큰 무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래서 0-3 패배는 치명상이 아니라 예방주사일 수 있다. km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