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은 왜 협상이 아니라 ‘충돌의 구조’가 되는가...

이란에게 핵은 선택이 아니라 기억의 결과

중동의 권력 구조는 단순한 대립 구도가 아니라 ‘3중 충돌 시스템’으로 작동

“핵을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긴장 구조를 관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이란의 역사와 핵 개발’ 상편에 이어 ‘이란 핵 문제와 중동 권력 구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란의 핵 문제를 단순히 한 국가의 군사력 증강으로 이해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 문제는 중동이라는 공간에서 누가 질서를 설계하고 주도할 것인가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핵심 축이며, 동시에 국제정치의 가장 복잡한 딜레마가 응축된 사안이다. 이란·미국·이스라엘 그리고 아랍 국가들까지 서로 다른 역사와 상황, 전략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긴장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란에게 핵은 선택이 아니라 기억의 결과다. 20세기 중반 1953년 이란 쿠데타는 외부 세력이 자국 정치 질서를 뒤집을 수 있다는 깊은 불신을 남겼고,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국가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각인시켰다. 수십만에서 백만여 명에 이르는 희생은 단순한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라는 집단적 인식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란이 추구하는 것은 핵무기의 사용이 아니라, 핵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다. 다시 말해, 핵은 공격 수단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억제하는 심리적 장치이며, 체제 붕괴를 막는 최후의 보험이다. 핵을 통해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핵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미국에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군사적·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핵확산을 막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이란이 핵 보유 문턱에 도달하는 순간, 중동 전체가 연쇄적으로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제재·협상·군사적 압박을 반복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 정점에 있었던 것이 이란 핵 합의였다. 이 합의는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거래였지만, 정치적 변화와 상호 불신 속에서 균열이 발생하며 다시 긴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보다 훨씬 더 단호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은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의 생존 문제다. 국토가 좁고 전략적 완충지대가 없는 상황에서, 적대 국가의 핵 보유는 단 한 번의 실패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억지’가 아니라 ‘선제 제거’라는 원칙을 선택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핵 시설에 대한 공습·사이버 공격·과학자 암살과 같은 비공식 작전을 통해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지속해왔다. 이들에게 핵은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은 또 다른 계산을 한다. 이들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동시에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피하려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스스로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특히 사우디는 이란이 핵을 보유할 경우 동일한 선택을 하겠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낸 바 있다. 이는 단순한 대응 전략을 넘어, 중동 전체가 핵 경쟁에 진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중동의 권력 구조는 단순한 대립 구도가 아니라 ‘3중 충돌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란과 미국은 제재와 협상을 반복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은 드러나지 않는 전쟁을 이어간다. 동시에 이란과 아랍 국가들은 종파 갈등과 지역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한다. 이 세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중동은 안정도, 완전한 충돌도 아닌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 구조가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 없는 ‘존재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란에게 핵은 체제 생존의 보증수표이고, 미국에는 반드시 막아야 할 확산의 시작점이며, 이스라엘에게는 제거해야 할 즉각적 위협이다. 아랍 국가들 또한 이 균형이 무너질 경우 자신들의 안보 구조가 붕괴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합리성이 서로 충돌하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다.

앞으로의 전개 역시 세 가지 경로로 압축된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국지적 충돌이 반복되면서도 전면전은 피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란이 공식 선언 없이 핵 보유국에 준하는 지위에 도달하는 경우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과 미국의 개입,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지는 대규모 전쟁이다. 이 경우 중동을 넘어 세계 경제 전체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란의 핵 문제는 ‘무기’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질서를 둘러싼 문제이며, 힘의 구조를 다시 짜려는 시도다. 이란은 자율적 강국을 지향하고, 미국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하며,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선제 대응을 택하고, 아랍 국가는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이 네 개의 이해관계가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한, 중동은 평화가 아니라 긴장 속에서 유지되는 균형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문제는 단순하다. 핵을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긴장 구조를 관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다음 ‘중동 갈등이 한국 경제·안보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하>를 통해 추가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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