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e스포츠, 국가대항전 ENC 참가 거절
EF, 국가대표 선발 간접 개입
660억원 들인 대회, ‘정당성’ 어디로
“상호 존중이 있어야 신뢰가 쌓인다”

[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아무리 큰돈이 걸린 국제대회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오는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처음 열릴 예정인 ‘2026 e스포츠 네이션스 컵(ENC)’ 참가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국가대항전이다. 총운영비 4500만달러(약 660억원), 총상금 2000만달러(약 295억원)를 내세운 대형 이벤트다.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작지 않다. 스포츠서울 취재 결과, 핵심은 국가대항전으로서 정당성 부족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달 ENC를 주관하는 e스포츠 재단(EF) 측은 한국e스포츠협회를 국가대표팀 파트너로 선정했다. 국가대표팀 구성과 운영, 코치 관리, 종목별 협업 조율 등을 맡는 역할이라 했다.
갑자기 다른 게 붙었다. EF 측이 일부 종목에서 선수단 구성에 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선수의 포함을 원한 듯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 체계를 정면으로 흔드는 일이다. 협회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무시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뽑는다. 주최 측이 특정 종목과 선수를 사실상 지명하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간섭’이다.
더 큰 문제는 태도다. EF는 대회 규모와 상금, 글로벌 국가대항전이라는 명분을 크게 홍보했다. 대표팀 선발에 주최국이 간접적으로라도 개입을 시도한 게 사실이라면, 이게 진정한 국가대항전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명분과 흥행만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번 사안을 잘 알고 있는 e스포츠 관계자는 “대표팀 구성에 간섭하는 것 자체가 도를 넘었다. 국가마다 시스템이 있는데 무례한 행위”라며 “대회 규모는 크게 홍보하지만 국가대항전의 본질을 생각하면, 한국이 가야 하나 싶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EF 측 홍보 담당자는 “한국이 불참 의사를 밝혔는지, 국가대표를 지정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본사에 확인한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ENC 취지는 나쁘지 않다. 국가대표 e스포츠 대회를 정례화하고, 100개국 이상에서 예선을 열어 10만 명 이상의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는 구상이다. 분명 의미가 있다. 종목도 16개로 다양하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다. 개최국이 돈과 무대를 쥐었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국가대표 구성에 손을 대는 순간, 대회의 정당성은 흔들린다.
한국의 불참 결정은 단순한 보이콧이 아니다. 태극마크의 기준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국가대표는 초청장도, 흥행용 캐스팅도 아니다. 절차와 경쟁을 통과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이름이다.
사우디가 진정한 글로벌 e스포츠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큰돈보다 상호 존중이 있어야 신뢰도 쌓이는 법이다. km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