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 ‘진짜’ 마지막 기회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사면초가에 놓인 대한축구협회(KFA) ‘정몽규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이정원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KFA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를 상대로 제기한 특정감사 결과 통보 및 조치 요구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정몽규 회장에 대한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가 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적 문제를 포함해 KFA의 주요 행정 난맥을 짚었다.

앞서 KFA는 불복하며 법원에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지난해 2월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고 정 회장은 차기 KFA 회장 선거에 출마해 4선에 성공했다. 문체부가 항고했으나 그해 5월 서울고법을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완전히 뒤집혔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한 달여 앞두고 나온 만큼 KFA 내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KFA는 내달 12일 예정된 이사회를 6일로 앞당겨 항소 여부를 포함, 이번 판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실무자 및 KFA 사정을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새로 소명할 내용이 부족해도 고위 관계자가 중심이 돼 정 회장에게 항소를 설득, 시간을 벌 것으로 전망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위기는 결코 정 회장을 돕는 게 아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행태로 비친다. 축구계는 물론 현 정치권에서도 KFA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월드컵을 앞두고 이번 판결이 나온 것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정 회장은 지난해 4선에 성공한 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준비된 미래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여론은 악화했다. 특히 정부와 갈등 구도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4선을 앞두고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코리아 풋볼파크(충남 천안시) 건립 및 개관과 관련한 홍보에 주력했다는 시선이 짙다.

자연스럽게 어느 때보다 능동적으로 일해야 할 시기에 실무자의 사기는 크게 떨어져 있다. 최근 KFA에서는 육아 휴직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제 육아를 위한 사례도 있지만, 업무상 불만을 품고 집행부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신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KFA를 둘러싼 본질적 문제를 인지하고도 여전히 정 회장을 향한 ‘예스맨’만 가득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판결 직후에도 대응 명분을 두고 내부에서 ‘눈앞에 있는 월드컵’ 또는 법원 판결 내 ‘이행 강제성이 없다’는 부분 등을 앞세워 다시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말이 많다.

법원의 판결은 행정 난맥 그 자체다. 오죽하면 문체부 역시 2년 전 감사 결과 발표에서 홍명보 감독이 감독 선임 과정에 관여하거나 특혜받은 건 없다면서 절차적 문제로 사실상 피해자가 됐다고 언급하지 않았나. 정 회장부터 지금이라도 귀를 열고 바른 문제 인식과 함께 이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쇄신 방안을 내놔야 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는 기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월드컵을 앞세워 또다시 피하려고 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걸을 것이다. 축구팀장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