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기아가 현대자동차를 꺾고 국내 자동차 시장 월간 판매량 1위에 등극했다. 기아가 ‘형님’ 격인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을 앞지른 것은 지난 1998년 이후 무려 28년 만의 이변이다. 부품 협력사 화재라는 돌발 변수가 현대차의 주력 차종 생산의 발목을 잡은 가운데, 기아 특유의 탄탄한 친환경차 포트폴리오가 빛을 발하며 극적인 ‘크로스오버’를 만들어냈다.

5일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지난달 기아의 국내 신규 차량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한 5만 5045대를 기록했다. 반면 굳건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현대차는 전년 대비 19.9% 급감한 5만 4051대에 그치며, 불과 ‘994대 차이’로 내수 1위 자리를 기아에 내줬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양사의 월 판매량 격차는 5000~7000대 수준으로 현대차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기아가 월간 판매량에서 현대차를 넘어선 것은 1998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현대차가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하면서 노조가 전면 파업에 돌입, 생산 라인이 완전히 멈춰 섰던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이듬해 현대차가 기아를 전격 인수하며 그룹으로 통합된 이후로는 기아가 내수 1위를 차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순위 역전의 결정적 트리거는 지난 3월 부품 협력사인 ‘안전공업’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다. 2.5 터보 엔진 밸브 등을 주로 공급해 온 이 업체의 화재로 인해 현대차의 고수익 핵심 라인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엔진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제네시스와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의 생산 차질이 치명적이었다. 실제 제네시스 라인업 판매량은 지난해 4월 1만 1504대에서 지난달 6868대로 반토막 났으며,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역시 3526대에서 2456대로 크게 줄어들며 전체 실적 하락을 주도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2.5 터보 엔진 의존도가 낮은 기아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하이브리드(HEV) 강세 역시 도움이 됐다. 올 1분기 내수 판매 1위를 견인한 쏘렌토 하이브리드 모델은 이번 수급난과 무관한 1.5 터보 엔진을 탑재해 생산 차질을 비껴갔다.

전기차(EV) 라인업의 선전도 한몫했다. 해당 부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목적 기반 차량(PBV)인 PV5와 EV3 등 EV 시리즈의 판매 호조가 더해지며 1위 탈환의 일등 공신이 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형님과 아우’의 순위 역전이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엔진 밸브 같은 핵심 부품의 수급 문제가 완전히 정상화되는 데는 최소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아가 하이브리드와 EV 라인업의 판매 호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내수 1위 역전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