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뒤에서 남 욕밖에 없었던 찌질한 한 남자가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왔다.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황동만(구교환 분)의 찬란한 성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동안 못살게 굴던 사람들과 화해했고, 보란 듯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벽히 써내며 그 어렵다는 데뷔에 성공했다. 그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는 황동만의 찌질함마저 꼭 껴안아 준 변은아(고윤정 분)의 온기가 있었다.

사실상 구원에 가깝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때 제자리걸음은커녕 뒷걸음질만 치던 황동만은, 자신의 가치를 유일하게 알아준 변은아를 만나면서부터 전진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빈틈없는 대본을 만들었고, 까다로운 선배 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숱한 위기를 버텨내고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멋진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누군가의 조건 없는 인정이 얼마나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하는지, ‘모자무싸’는 진솔하게 증명해 냈다.

황동만의 트라우마 극복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공기에 잡아먹힐 듯한 공포를 감추려 독설을 쏟아내는 황동만의 폭주를 멈춰 세운 건, 그를 꾸짖거나 고치려 들지 않고 묵묵히 곁을 내어준 변은아의 애정이었다. 아홉 살에 버려진 상처로 곪아 터진 변은아 역시, 자신에게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베푼 황동만 덕분에 극도의 스트레스마다 쏟아내던 코피를 멈출 수 있었다. 서로의 결핍을 비난 없이 품어낸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인류애의 발현이다.

아울러 자신을 무시하던 박경세(오정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과하는 황동만의 용기는, 내가 먼저 무장해제 될 때 비로소 타인과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황동만뿐 아니라 개성 강한 캐릭터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다각적인 각성을 이뤄냈다. 타인의 시선과 가시 돋친 말에 스스로를 검열하며 코피를 흘리던 변은아가 친엄마 오정희(배종옥 분)를 향해 “나는 당신의 말로 죽을 수 없는 존재”라며 이겨내는 순간이나, 시보다 용접이 낫다며 술로 도피하던 황진만(박해준 분)이 “무가치하지만 살아내겠다”며 다시 펜을 쥐는 장면, 박경세를 매섭게 몰아붙이던 고혜진(강말금 분)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대목이 그렇다.

인간의 존엄을 되돌아보는 이야기 위에서 배우들은 완벽하게 뛰어놀았다. 황동만이 가진 엄청난 대사량을 쏟아내는 중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드러낸 구교환이나 차분한 태도로 크지 않은 변화 속에서 박해영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깊은 사랑을 담아낸 고윤정은 최고의 앙상블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일잘러’ 고혜진을 연기한 강말금과 성공한 지질남 박경세를 훌륭히 펼쳐낸 오정세, 밝고 활기찬 에너지 속에 따뜻함을 담아낸 장미란 역의 한선화, 시 같은 대사를 묵직하게 담아낸 황진만 역의 박해준, 날 선 말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뚫고 나아가려는 오정희 역의 배종옥까지, 이 외에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공기를 채운 모든 배우들이 높은 가치의 열연을 그려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 해결되지 않은 결핍과 싸운다. 그 지난한 싸움이 때론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가장 안온한 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동만과 은아에게, ‘모자무싸’는 가장 따뜻하고 단단한 손길을 건네며 찬란하게 퇴장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