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시청률 3%. 과거 방송가에서는 실패에 가까운 숫자였다.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면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예능도 마찬가지였다. 본방송 시청률은 광고 단가와 직결됐다. 숫자는 냉정했다. 시청률이 낮으면 화제성도, 수익성도 함께 낮게 평가됐다.

지금은 다르다. 시청률 3%만으로 작품의 성패를 말하기 어려워졌다. 본방송을 보지 않은 시청자는 OTT에서 다시 본다. 핵심 장면은 유튜브와 숏폼으로 잘려 퍼진다. 출연자의 말 한마디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밈이 된다. 방송의 성적표가 한 장에서 여러 장으로 늘어났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청률 그래프가 거의 전부였다. 지금은 방송 다음 날 내부에서 같이 보는 자료가 훨씬 많아졌다. OTT 순위, 클립 조회수, 온라인 반응, 검색량까지 함께 본다”며 “시청률이 낮다고 바로 실패라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시청 환경에서 출발했다. 가족이 거실에 모여 같은 시간에 같은 채널을 보던 시대는 멀어졌다. 시청자는 각자 다른 기기로 콘텐츠를 본다. TV 앞에 앉는 대신 출근길 휴대전화로 본다. 본방송 대신 퇴근 후 OTT로 몰아본다. 한 회 전체를 보지 않아도 유튜브 클립으로 장면을 소비한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요즘 시청자는 본방송과 다시보기를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이 보는 시점이 곧 첫 시청”이라며 “방송사 기준으로는 재방송이나 VOD일 수 있지만, 시청자에게는 그게 본방송이다. 이 차이를 봐야 한다”고 짚었다.

드라마는 이 변화에 빠르게 반응했다. 회차마다 강한 엔딩을 배치한다. 짧은 영상으로 잘라냈을 때도 의미가 통하는 장면을 만든다. 배우의 감정 연기, 대사, 갈등 장면은 온라인 확산을 염두에 둔다. 한 회 전체의 완성도만큼이나 ‘퍼질 수 있는 장면’이 중요해졌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과거 예능은 본방송 안에서 웃음을 쌓았다. 지금은 방송 이후의 확산을 계산한다. 출연자 간 관계성, 즉흥 대화, 리액션, 갈등과 화해의 순간이 클립 단위로 소비된다. 제작진은 본방송 시청률뿐 아니라 유튜브 조회수와 댓글 반응을 함께 본다. 방송은 이제 방영과 동시에 온라인 콘텐츠가 된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주 입장에서도 시청률만 보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온라인에서 얼마나 언급되는지, 출연자와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맞는지, 클립이 얼마나 오래 도는지를 본다”며 “예전에는 높은 시청률이 곧 안정적인 노출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낮은 시청률이어도 타깃층 반응이 선명하면 집행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부작용도 있다. 온라인 화제성을 의식한 장면이 늘면서 자극적인 갈등이나 과한 편집이 반복될 수 있다. 드라마는 빠른 전개를 위해 인물의 감정선을 덜어내기도 한다. 예능은 출연자 논란과 악성 댓글에 더 취약해진다. 짧은 장면으로 소비되는 만큼 맥락이 사라질 위험도 커졌다.

그래도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 시청자는 이미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콘텐츠를 본다. 방송사는 더 이상 TV 채널 안에서만 경쟁하지 않는다. 같은 시간대 경쟁작보다 OTT, 유튜브, 숏폼, 라이브 커머스, 게임과 싸운다. 방송의 경쟁자는 방송만이 아니다.

방송 성적표는 바뀌었다. 이제 숫자는 하나가 아니다. 콘텐츠의 운명도 본방송 밤 10시에 끝나지 않는다. 방송은 TV에서 시작해 플랫폼을 건너고, 클립으로 쪼개지고, 다시 이야기로 살아남는다. 성공의 기준은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지금 방송가는 낮은 시청률보다 더 오래가는 화제성을 묻고 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