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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대타의 홈런’, 한 번 더 터질까.
‘포스트 김연아’에 목마르던 한국 여자 피겨가 뜻밖의 낭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고교 3학년 진학을 앞둔 최다빈(17·군포수리고)이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첫 피겨 종목 금메달을 안겼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출전권을 대타로 얻은 뒤 일궈낸 쾌거였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최다빈의 시선은 내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으로 향한다. 이 대회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대타로 태극마크를 달게 된 최다빈은 ‘톱10’과 내년 평창 올림픽 쿼터 두 장에 도전한다.
최다빈은 지난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빙상장에서 끝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에서 합계 187.54점(쇼트프로그램 61.30점+프리스케이팅 126.24점)을 얻어 리쯔쥔(중국·175.60점)과 엘리자벳 투르신바예바(카자흐스탄·175.04점)를 넉넉하게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피겨는 1986년부터 시작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두 개(1999년 아이스댄스 양태화-이천군, 2011년 여자 싱글 곽민정)를 따낸 게 전부였다. ‘피겨 퀸’ 김연아는 2007년 창춘 대회에선 허리 부상으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선 휴식과 세계선수권 준비 등으로 불참해 동계아시안게임 출전 기록이 없다. 그러면서 계속된 31년 ‘노골드 수모’를 최다빈이 말끔하게 씻어냈다.
사실 최다빈은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는 선수였다. 최다빈은 동계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을 겸해 열린 지난해 10월 회장배 랭킹대회에서 5위에 그쳤고 아시안게임 출전이 가능한 만 15세 이상 중엔 3위를 기록해 두 장 뿐인 티켓을 놓쳤다. 랭킹전에서 172.11점을 기록해 최다빈(171.65점)보다 불과 0.46점 높아 삿포로로 가게 된 박소연이 발목 수술 등으로 기권하면서 그의 차례가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최다빈은 동계아시안게임 불과 일주일 전 강릉에서 개최된 ISU 4대륙선수권에 출전하는 등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생애 첫 국제종합대회’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일본 랭킹 1위 미야하라 사토코가 불참하면서 메달권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금메달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4대륙선수권에서 개인 최고 점수로 5위(182.41점)를 한 뒤 자신감을 이어가 해냈다”고 털어놓을 만큼 그의 우승은 이변과 기적이었다. 갑작스럽게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최다빈은 ‘끝내기 홈런’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다빈은 한 번 더 ‘대타’로 링크 위에 오른다. 내달 29일부터 4월 2일까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단 한 명의 여자 싱글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대회의 출전자는 지난달 피겨 종합선수권에서 3위,만 15세 이상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동갑내기 김나현이었다. 최다빈은 그에 불과 0.30점 뒤져 2년 연속 세계선수권 출전이 좌절되는 듯 했다. 그러나 김나현 역시 부상으로 최근 세계선수권 출전 포기를 결심하면서 최다빈이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
헬싱키 세계선수권은 내년 평창 올림픽 나라별 쿼터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최다빈의 어깨가 무겁다. ISU 규정에 따라 한국 여자 피겨는 최다빈이 2위 이내 입상할 경우 3장, 3~10위를 차지할 경우 두 장의 평창 올림픽 쿼터를 얻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 미국의 강자들이 모두 나서는 점은 부담스럽지만 최다빈이 이번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얻은 187.54점만 기록하면 10위 이내 입상이 가능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10위에 오른 나가수 미라이(미국)의 합계 점수는 186.65점이었다. 최다빈은 “4대륙선수권 뒤 김연아 언니가 ‘잘 했다. 수고했다’고 하셔서 힘이 된 것 같다”며 “나현이 몫까지 꼭 해내겠다”는 말로 ‘톱10’을 다짐했다.
피겨 전문가들이 꼽는 최다빈의 강점은 ‘컨시’와 점프의 정확도다. ‘컨시’는 꾸준함을 뜻하는 영단어 ‘컨시스턴시(Consistency)’를 줄여서 쓰는 말인데 대회마다 성적의 기복이 없고 일정한 점수가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4대륙선수권에서도 프리스케이팅 초반 실수를 했으나 흔들리지 않고 후반에 점수를 만회해 한국 피겨의 자존심을 살렸다. 김연아처럼 3회전 점프 도약때 에지가 정확하다는 점도 오늘의 최다빈을 만든 원동력이다. 특히 그는 4대륙선수권부터 쇼트프로그램 주제곡을 기존의 ‘맘보’ 대신 영화 ‘라라랜드’의 삽입곡으로 바꾼 뒤 180점대를 두 차례나 넘었다.
최다빈은 한국 여자 피겨의 ‘골짜기 세대’와 같다. 3살 위 박소연 김해진이 김연아와 함께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3~4살 밑엔 여자 피겨의 미래를 책임질 임은수 김예림 유영이 국내대회를 휩쓸며 무섭게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최다빈은 그 경쟁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피겨 선수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17세에 꽃을 피우고 있다. 한 달 뒤 그의 연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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