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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으니 서로가 얼마나 진화했는지 모른다. 동지에서 적으로, 태극마크를 달면 다시 한 솥밥을 먹고 있어 우정은 변함없지만, 단기전에서 적으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2019 KBO리그 와일드카드결정전(WC) 1차전에서 NC 양의지와 LG 김현수의 맞대결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두산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한국시리즈 우승 영예를 누린 둘은 NC와 LG로 각각 이적한 뒤 포스트시즌(PS)에서 처음 만났다. 양팀 전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데다 NC는 이날 경기에서 패하면 시즌이 완전히 끝나기 때문에 조금 더 절실하다. 양의지 입장에서는 김현수를 반드시 봉쇄해야만 한다.
첫 대결에서는 양의지가 흐름을 잠그는데 성공했다. 1-0으로 선취점을 빼앗긴 1사 1루에서 김현수에게 초구 슬라이더를 던져 투수 땅볼로 솎아 냈다. 메이저리그 경험을 쌓아 외국인 투수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 스스로 PS만 되면 작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유인책이 적재 적소에 먹혔다.
소강상태로 접어든 3회말 1사 후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김현수가 ‘멍군’을 불렀다. 메이저리그와 LG에서 또다른 경험을 쌓으면서 수 싸움 등이 깊어졌다는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양의지는 초구에 바깥쪽 높은 포심 패스트볼을 요구해 스트라이크를 선점한 뒤 2구째도 바깥쪽 포심을 요구했다. 크리스천 프리드릭이 가볍게 꽂아 넣어 순식간에 볼카운트 0-2를 만들었다. 카운트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선택지가 넓어졌다. 변화구 유인구로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몸쪽 하이패스트볼로 시선을 흐트러놓는 등의 방법이 있다. 안전한 리드를 주로하는 양의지는 변화구를 낮게 쓰는 쪽을 택했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해 타이밍을 빼앗으면 좋은 일이지만, 김현수가 골라내도 호흡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한 듯 보였다.
프리드릭이 던진 커브(127㎞)가 잘 떨어졌지만, 김현수의 노림수가 더 좋았다. 김현수는 빠른 공 두 개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것을 지켜본 뒤 3구 째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스트라이드하는 발을 1루쪽으로 뺐다. 몸쪽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의미인데, 스윙을 시작하는 순간도 중간타이밍으로 스스로 늦췄다. 빠른 공 3개를 잇따라 던지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 듯한 타이밍이었고, 깨끗한 중전안타로 연결됐다.
김현수가 살아나가자 양의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프리드릭이 LG에 약했고, 채은성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템포가 빨라졌다. 김민성에게 볼넷을 내줘 2사 만루 위기에 몰려 흐름을 내줄 위기에 처했다. 상대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를 살려주는 것은 팀과 관중석 분위기까지 끌어 오르게 만든다는 것을 체감했다. 2사 만루에서 유강남을 파울플라이로 직접 처리한 뒤 고개를 숙이던 표정에 ‘십 년 감수했다’는 안도감이 엿보였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