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과 창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까칠한 시선과 모진 논조로 정부의 체육정책에 날선 비판을 퍼부어 댄 주된 이유는 애오라지 하나다. 쏟아내는 정책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다. 그런 정책이니 만큼 실패 확률은 높았다. 계획-실행-평가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줄이는 평가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늘 그렇듯 빠져버리는 기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아니나 다를까,빗나갔어야 할 예측은 어찌 그리도 꼭꼭 들어맞는지…. 이게 바로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체육인들을 화나게 한 체육정책의 민낯이다.

지난 정권의 체육정책은 전문성 없는 정치가 현실을 무시한 채 정치공학적 셈법과 논리로 체육을 지배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 체육의 본령인 엘리트체육의 힘을 빼기 위한 정교한 정치적 술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엘리트체육의 흠결을 침소봉대해 체육과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것도 모자라 하나의 체육을 엘리트체육 대(對) 반엘리트체육의 진영으로 갈라놓는 그들의 섬뜩한 전술은 한국 체육의 시계를 한참이나 돌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잿빛 구름만 자욱했던 체육계에 모처럼 햇살 같은 낭보가 전해졌다. 체육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가 지난 29일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십년묵은 체증이 가신다는 듯 환호작약한 게 체육계의 공통된 반응이고 보면 지난 정권에 대한 체육계의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문체부는 지난 정권에서 체육계의 극심한 반발을 산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 가운데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에 대해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정성이 짙게 배인 문체부의 정책 선회에 체육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변화라기보다 정책 대상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했다. ‘갑’의 입장에서 군림했던 정부가 모처럼 정책 실수를 인정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겠다는 태도는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다.

문체부의 정책 변화는 그동안 체육계를 지배했던 ‘허구적 관념의 실체화’를 걷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게 했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이 가장 쉽고 유용하다. 권력의 날조로 허위를 사실로 믿게 만드는 ‘허구적 관념의 실체화’는 다양성의 세상을 적과 아군의 이분법의 세상으로 치환하는 레토릭(rhetoric)이다. 모든 문제를 이 프레임안에 집어넣어 상대를 적으로 몰아붙이면 자신의 논리를 손쉽게 관철할 수 있다.

“한국체육에서 엘리트체육은 모순의 응집체이며 이를 해체하는 게 체육개혁의 시작”이라는 게 바로 지난 정권이 체육에서 날조한 ‘허구적 관념의 실체화’의 핵심이자 모토다. 분명 엘리트체육이 시대정신에 맞지 않고 시민사회의 눈높이에 견줘 처지는 점도 없지 않지만 이게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의 축’은 결코 아니다. 체육의 국제경기 경쟁력은 아직도 유용한 가치이며 엘리트체육의 폐기와 포기가 한국 체육의 질적 패러다임을 고양시키는 전제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새 정부의 정책 변화가 체육을 휘감고 있던 ‘허구적 관념의 실체화’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내린 용단이라 앞으로 이어질 체육정책에 거는 기대감은 그래서 더욱 크다.

지난 체육정책의 저변에 깔려 있는 편향된 신념과 정치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를 표방한 학교체육 정책의 기저에는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인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명분 아래 전교조가 씨를 뿌리고 장악한 한국 교육의 냉정한 현실은 과연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편향성에 매몰돼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전교조의 방향성은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에서 거부당하는 상품성 없는 인력을 배출하는 폐단을 낳았다. 전교조가 한국 교육의 황폐화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학생들을 노동시장에서 거덜떠 보지 않는 경쟁력 없는 상태로 방치한 장본인이 바로 전교조다. 교육경쟁력의 하향평준화는 역설적으로 학생들을 무한 경쟁력의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체육분야로 정한 학생 선수들의 소중한 결단을 무시하는 건 학생들을 경쟁력없는 상태로 방치하는 전교조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 문체부가 학습권 뿐만 아니라 학생선수들의 운동권도 중요한 권리라고 인정한 건 그동안 학교체육 정책에 알게 모르게 관여한 흔적이 있는 전교조의 정책 방향성과도 정면배치돼 의미가 깊다. 자아실현과 직업선택을 중요하게 여긴 학생선수들의 미래비전은 경쟁력의 하향평준화를 부추기는 전교조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출석 인정 일수 축소 및 학기 중 주중 대회 금지라는 현실성 없는 정책이 과연 어떤 내용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그건 현장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허심탄회한 조율을 통해 결정돼야 할 문제다. 실수의 겸허한 인정은 아름다운 용기에 다름 아니다. 문체부의 아름다운 용기에 오랜만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