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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엘리트 체육은 변하지 않았다. 적어도 프로야구에서는 말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실력’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기조는 여전하다. 학교 폭력으로 징계를 받았던 선수가 프로에 지명되고, KBO는 상습 도박을 일삼은 선수를 레전드로 선정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15일 2023 KBO 신인드래프트 현장에서 고려대학교 투수 김유성(20)을 지명했다. 앞서 김유성을 지명했던 NC는 학교 폭력 전력이 확인되자 그와의 계약교섭권을 포기했다. 김유성은 결국 프로에 바로 입단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다가 올해 신설된 ‘얼리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재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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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열린 2023년 KBO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두산 김태룡 단장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고려대학교 투수 김유성을 지명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소공동 | 황혜정기자.

두산 김태룡 단장은 이번 지명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선수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선수를 만나서 과거사를 확인한 뒤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폭력 사태 진상을 파악한 뒤 지명을 철회할 가능성에 관해 묻자 “깊은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차근차근 해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명 전부터 김유성을 어느 팀에서 데려갈 것인가 공방이 일었다. 지명은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여졌다. 당장 1군에 올라와서 뛰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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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레전드에 선정된 임창용 포스터. 사진 제공 | KBO

상습 도박과 사기, 세금 체납 등으로 숱한 구설에 오른 투수 임창용(46·은퇴)은 지난 19일 KBO리그 40주년 기념 ‘레전드 40인’에 선정됐다. 건실하게 운동한 선수들을 제치고 임창용이 선정되자 대중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KBO 역시 사전에 이런 반응을 의식한 듯,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선수의 굴곡 또한 야구 역사의 일부이기에 순위와 평가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는 변을 덧붙였다. 앞서 KBO는 ‘학교 폭력’과 ‘음주 운전’ 전력이 있던 박철순(66·은퇴)도 레전드로 선정해 논란을 만들었다.

이번 선정 작업은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미국 프로야구(MLB)나 일본 프로야구(NPB)처럼 ‘명예의 전당’을 신설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전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력만 뛰어나면 선정’이라는 기조는 미국과 일본에 없다.

약물 투약 의혹이 있는 미국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리 본즈(58)와 사이영상 7회에 빛나는 로저 클레멘스(60)는 미국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했다. 현역 시절 결정적인 투약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중과 야구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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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가 공식 발간한 책자 ‘클린베이스볼’ 가이드북.

이런 논란은 스포츠 부정행위의 ‘개념적 모호성’이 한몫한다. KBO가 공식 발간한 ‘클린베이스볼’ 가이드북에 따르면, 선수 생활 도중 학교 폭력과 음주 운전, 도박, 성폭력 등을 저질렀을 경우 어떤 징계를 받는지 명시돼 있을 뿐, 징계 이후의 사후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돼 있지 않다.

징계 이후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없는 것은 유망한 선수에게 재차 기회를 주자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자칫 ‘징계 받으면 그만’이라는 면죄부가 될 여지도 있다. 그 결과가 김유성, 임창용, 박철순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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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가 공식 발간한 책자 ‘클린베이스볼’ 가이드북. 스포츠 폭력과 도박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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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가 공식 발간한 책자 ‘클린베이스볼’ 가이드북.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한국 야구 ‘레전드’ 이승엽은 후배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비록 우리가 공인은 아니지만 유명인으로서 야구장 안팎에서 선배들의 안 좋은 선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모범이 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그것이 침체된 한국 프로야구가 살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승엽은 누구나 하는 흔한 말인 “실수를 저질러도 운동 선수는 ‘실력’으로 되갚으면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사람이 되자”는 말을 했다. ‘진정한’ 야구 레전드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