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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세연(염정아 분)은 평범한 주부다. 가부장적인 공무원 남편 진봉(류승룡 분), 엄마보다 아이돌 스타를 더 좋아하는 사춘기 딸(김다인 분)과 목소리 한 번 듣기 힘든 수험생 아들(하현상 분)...가족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그는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너 죽는단다. 2달 남았단다.”

폐암, 그리고 시한부 선고. 어쩌면 생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자신의 생일날 세연은 결심한다. “내 인생 가장 찬란했던 시기, 첫사랑을 찾아야겠어!”

다소 황당한 판타지 같은 설정은 영화를 만나 관객을 설득한다. 마치 중년판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전국 방방곡곡 새겨진 첫사랑의 흔적을 따라나서다 보면 깔깔 웃다가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매력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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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풍성하게! 그때 그 시절 그 음악

‘인생은 아름다워’는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인기 대중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영화를 표방한다. 음악은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한 대중가요들을 엄선해 국내 관객에게 다소 생소한 뮤지컬 장르를 친숙하게 접근했다.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조조할인’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신중현의 ‘미인’,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행이다’,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 등 세대를 불문한 명곡들이 122분간 적재적소에 배치돼 관객의 추억을 자극한다.

배우들이 직접 부른 노래와 춤도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스크린 데뷔 전 넌버벌 뮤지컬 ‘난타’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던 류승룡은 녹슬지 않은 춤실력과 황홀한 저음을 자랑한다.

염정아의 다소 서툰 노래·춤솜씨도 매력적이다. 영화 후반부, 염정아의 아들로 출연하는 밴드 호피폴라 하현상의 음성은 단연 백미다. 최국희 감독이 오디션 당시 “첫 소절 음성만 듣고 합격”을 외쳤다는 그의 보컬은 스토리와 어우러져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다. 염정아 역시 “아들 역의 하현상이 엄마를 위해 노래불러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추억저격 볼거리도 깨알같다. 노란 단풍잎과 함께 등장한 서울극장, 덕수궁 돌담길,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 방송 등 그 때 그 시절을 환기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류승룡은 “서울극장이 영업을 종료하기 전 촬영을 마쳤는데 촬영날 눈이 내렸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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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배우의 연륜! 류승룡-염정아의 부부연기

괜히 대한민국 톱배우가 아니다. 류승룡과 염정아는 빼어난 연기호흡으로 관객을 웃겼다 울린다.

가부장적인 공무원 남편 진봉 역의 류승룡은 힘을 쭉 뺀 연기로, 현실 남편을 표현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에게 “그러니까 밀가루 좀 작작 먹으라고 했지”라며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이내 아내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드러낼 줄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의 사랑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첫사랑을 찾겠다는 아내의 황당한 요구에 억지춘향격으로 따라나서며 툴툴대다가도 옛사랑의 단서에 질투를 드러내는 아이같은 모습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아내를 위해 깜짝 쇼를 마련하고, 사망증명서 앞에 망설이는 모습에서는 가슴 깊은 먹먹함을 안긴다.

사실상 영화의 흐름을 잡고가는 염정아의 연기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든다. 병원에서 폐암선고를 받은 뒤 밤새 뒤척이다 옷 정리를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집안이 어질러졌다며 타박하는 남편에게 “여름옷을 버려야 할지, 겨울옷을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데...당신은 잠만 쿨쿨 잘 자더라”며 펑펑 우는 장면에서는 관객 역시 자동 반사처럼 눈물을 흘리고 만다. 첫사랑의 실체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남편 진봉에 빙의해 울다가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염정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박세완, 세연의 첫사랑을 연기하는 옹성우의 연기도 볼거리다. 풋풋하면서도 설렘 가득한 두 사람의 서울 데이트 장면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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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이란? ‘인생은 아름다워’의 메시지

뮤지컬이란 장르에 가려졌지만 영화는 122분의 러닝타임동안 ‘웰다잉’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오열과 슬픔으로 가득한 죽음보다 웃음 가득한 추억을 안고 밝고 유쾌하게 이별하자는 주제 의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릴수록 색이 짙어지는 은행잎, 단풍잎처럼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잊지 말고 되돌아 보게 될 것이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