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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골프나 인생의 동반자는 참 고맙고 좋은 친구이다.
골프는 일반적으로 4명이 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해외처럼 1~2명이 자기 카트를 끌고 라운드하거나 5명이 할 수도 있다. 통상 프로 대회에서는 3명의 선수가 1개 조로 진행한다. 가끔 부킹은 되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동반자가 빠질 때가 있다. 그러면 누구를 부를까?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새삼 나의 친구 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세계 최고의 ‘경영사상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찰스 핸디는 87세에 손자들에게 지혜를 듬뿍 담은 21편의 편지글을 엮어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는 제목의 책을 올해 출간했다. 그는 국내 한 언론사와 서면 인터뷰에서 “살아오면서 경영사상가로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친구가 정말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저자의 전성기 시절이나 거동조차 힘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사람을 우선하면 이익은 자연히 따라오며, 정직한 친구는 최고의 투자처라고 했다. 그리고 친절은 우정을 이어주는 접착제라고 말한다.
친구란 ‘친하게(親) 예전부터(舊) 사귄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헤어진다. 어떤 이는 친구의 사전적 정의처럼 어린 시절 죽마고우가 진짜 친구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인생 후반에 만나더라도 의기투합(意氣投合·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음)만 된다면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도 한다. 하여튼 ‘친구 따라 강남’ 가서 잘 살기도 하고 못살기도 한다. 지나면서 보니 만난 시점보다는 만남 이후 신뢰가 더 중요하고, 친구 관계가 더 돈독해지려면 내가 먼저 애정과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독 대인 관계에서 나이를 많이 따진다. 어떤 단체나 모임에 참여하면 꼭 나이부터 물어본다. 내부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야 처신하기가 서로 편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지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신·구 내부 갈등이 나이 문제로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터져 나온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동년배임에도 입문 시기에 따라 엄격하게 선후배를 구분하는 분위기다. ‘오뉴월 하룻볕이 무섭다’라며 세심하게 서열을 챙기는 군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나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남녀 불문하고 개인 정보인 몸무게나 나이 등을 묻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라고 보는 듯. 나이가 어때서! 남녀노소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일 거다. 편한 친구 사이가 누가 연장자임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꼰대 관계보다는 소통이 훨씬 잘되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 관계에서도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꼭 연락하며 친구를 이용만 하려 들고, 정작 친구가 필요할 때는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심지어 더 도움이 될 듯한 사람을 만나면 나와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례도 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바쁨을 핑계로 무심하게 맨날 반성만 하고 지낸다. 친구는 무한정의 물질적 정신적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의리 없는 관계라면 굳이 지속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친구는 상대에게 일방적인 요구만 하지 않고, 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처럼 끝까지 서로 믿어주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제2의 자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부터 정직하고 성실한 언행이 습관이 되어 있다면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또 그런 진국인 사람을 정녕 친구로 곁에 두고 싶다면 정성을 다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사회적 나이 관념 때문에 쉽게 말을 트지는 못해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몇 명의 친구만 있어도 이 세상이 전혀 외롭지 않을 거다.
마라톤처럼 길고 긴 여정을 가는 골프 프로들의 경쟁 세계에서도 서로 고락(苦樂)을 함께하고 내게 언제든지 힘이 되어 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아무리 황무지 같은 세상이어도 따듯하게 느껴지고, 스포츠계를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된다”라고 말했던 찰스 핸디가 후회막급이라고 말한 것 중 하나가 젊었을 때 테니스, 골프 등 개인 스포츠를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두지 못했음이라고 했다. 운동과 우정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오늘 나와 같은 방향을 걷고 있는 골프나 인생의 동반자는 참 고맙고 좋은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나이 타령일랑 접어두고, 명랑 골프 같은 인생에 진지한 우정 오랫동안 함께 나누기를 응원해본다.
곽해용 칼럼니스트·곽보미 프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