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음주한 것은 사실이잖아.”

논란이 일고, 프레임이 씌워진 순간 이미 사냥은 시작된다. 어떤 프레임에 사안을 가두느냐에 따라 이를 접하는 이용자의 해석에 영향을 끼친다. 미디어가 가진 점화효과가 극대화하면, 파문을 걷잡을 수 없이 확장한다. 진실은 사라지고, 미디어가 짠 프레임 안에 담긴 내용이 판단의 잣대가 된다. 가짜뉴스였지만 ‘음주한 것은 사실’이고, ‘사회적 물의가 일어났으니 마땅히 징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징계수위를 보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의 고민이 묻어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기간 중이었지만 휴식일 전날 일부 선수가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일본전 선발투수였던 국가대표 에이스가 당사자. 술 마신 행위만으로는 문제삼을 수 있지만, 선수들이 느꼈을 허탈함과 울분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당초 폭로된 사실에 비추면 상벌위를 개최한 것 자체를 머쓱하게 여길 수도 있다. 오전 7시30분에 구장으로 출발한 호주전. 출발시간 1시간30분 전까지 술을 마시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경기 당일 아침까지 술마시고, 경기 후 다시 찾아와서 또 새벽까지 마셨다”는 폭로가 사태의 발단이다. KBO 조사위도 이 부분을 집중 조사했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한 것으로 발표했다.

익명 폭로였음에도 선수들이 얼굴을 공개하고, 고개를 숙인 데는 사태 확산방지 의도만 담긴 건 아니었을 것이다. 거짓으로 밝혀지면 국가대표가 아닌 프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만큼 비난받았다. 술은 마셨지만, 폭로 내용과 다르다는 것을 강변하기 위한 공개 사과. 그러나 그 순간 쟁점이던 ‘언제’는 빠지고 술 마신 ‘행위’만 남았다. “어쨌든 술마신건 사실”이라는 프레임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미디어가 어쨌든 징계해야 하는 쪽으로 프레임을 짠 건 전적이 있어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음주, 도박 등의 문제가 꾸준히 불거졌다. 종목을 막론하고 ‘국제대회 술판’은 늘 이슈였다.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검사실 앞에서 “결백하다”고 외친지 5분 만에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실토한 사례도 있다. 선수들이 “아니”라고 강조해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다.

특히 이번 WBC는 도쿄올림픽 껌과 백스텝 사태로 촉발한 분노가 ‘세리머니 횡사’ ‘졸전’ ‘완패’ 등으로 폭발한 상태여서 파문을 더 키운 게 사실이다. 호주, 일본전을 이겨 2라운드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면, 술마신 건 문제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은 이번 사태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확인되지 않은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야구판이 흔들렸다. 선수나 구단 KBO 모두 발빠르게 대응해 일주일 만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미 난도질된 선수들은 상처 회복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마운드로 돌아와 팀을 구하면 ‘영웅’ ‘속죄투’ 등의 수식어가 미디어를 장식할 게 뻔하다. 선수들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미안함을 전하겠지만, 사실확인 없이 이들을 벼랑끝으로 내몬 미디어는 조회수와 구독자수 확장에 쾌재를 부를 뿐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