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사회초년생 이소연(27·여)씨는 지난 4일 생애 처음으로 종이 신문을 구하러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MZ세대(1980년~2000년대 중반 출생자)인 그에게 종이 신문 구매는 낯설지만 설레는 일이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야구광’ 아버지를 따라 잠실구장을 드나들며 줄 서서 박용택, 이병규 사인을 받고 기뻐했던 이 씨는 그렇게 LG트윈스 팬이 됐다.

그리고 ‘엘린이’ 출신 이 씨는 30세가 되기 전 드디어 꿈을 하나 이루게 됐다. 바로 LG트윈스의 정규시즌 우승을 보게 된 것.

1996년생인 이 씨에게 LG 우승은 생애 처음이다. LG의 직전 우승은 무려 29년 전인 1994년이다. 이소연 씨는 연휴 마지막 날이던 지난 3일, LG의 2023시즌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되자 아버지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함께 직관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도 기쁨 가득한 메시지가 쏟아졌다.

기쁨도 잠시, 이 씨는 황급히 컴퓨터를 켰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LG트윈스 우승 기념 굿즈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굿즈를 한가득 지르기 위해 굿즈 스토어 사이트를 방문했는데 구단은 우승 굿즈를 팔지 않았다.

LG 관계자는 4일 스포츠서울에 “오늘 선수단이 경기 종료 후 착용하는 우승티, 우승모자, 기념구, 우승 엠블럼 와펜, 우승 엠블럼 키링이 판매 상품으로 준비되어 있으나, 선수단 세리머니 전에 선공개할 수 없어서 우승 확정 직후에 판매할 수 없었다. 다음주 홈경기 일정에 맞춰 온·오프라인 동시 판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 씨는 ‘유일한’ 굿즈 격인 LG 우승이 전면 배치된 신문을 찾아 나섰고, 평소 출근 시간보다 40분 일찍 집을 나서 걸어서 30분이 넘는 편의점까지 돌아다닌 후에야 아버지 몫까지 2부의 스포츠신문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게 지난 10월4일자 ‘스포츠서울’ 신문이 본사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팔려나간 이유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종이 신문은 응원하는 구단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신문을 사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읽을 수 있게 되자 신문 구독률은 하락했다.

그러나 그 ‘희소성’으로 인해 젊은 층은 좋아하는 팀의 우승 순간이 1면에 담긴 신문을 일종의 굿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도 우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지면에 인쇄된 신문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당시 현장의 생생함이 다른 콘텐츠로 덮이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쇄 매체의 힘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8일, SSG랜더스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꺾고 통합 우승을 차지하자 그다음 날인 9일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62·남)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10~20대 젊은 고객이 가판대에 있는 스포츠신문을 앞다투어 사 갔다는 것이다.

A씨는 “갑자기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오더니 스포츠신문을 싹쓸이했다. 남아있는 게 없어 뒤에 온 사람들에게 팔지 못했다”며 “평소에는 어르신들이 신문 한 부씩 사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젊은 손님들이 신문을 사러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떤 손님은 근처 편의점을 모두 들렀다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단의 기념비적인 역사가 종이로 인쇄된 신문은 그 자체로 ‘굿즈’가 됐다. 그날 신문은 한 번 찍어내면 다시 찍지 않아 소장욕을 부른다. 이른바 한정판인 것이다. 당시 SSG 구단의 연고지 인천 지역의 스포츠서울 인천갑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인천 지역에 깔린 11월 9일자 ‘스포츠서울’ 신문이 완판됐다”고 말했다.

당시 본지는 이러한 팬들의 수요를 파악해 지난해 SSG랜더스가 통합우승을 차지하자, 해당 지면을 미처 구매하지 못한 SSG팬을 위해 사연을 공모하고 선정된 50명에게 지면을 무료 배송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본지 야구부 공용 메일함에 300통이 넘는 사연이 접수됐는데,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고3 수험생 등 10대도 여럿 있었다.

지난 4일 LG의 29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 때도 해당 지면이 완판되자, 본지 야구부 기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더 많은 LG팬이 우승 순간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궁리했다.

그 결과 10월 4일자 지면을 특별판(90년,94년 우승지면 포함)으로 제작해 추가로 찍기로 했다. 그리고 LG 홈경기가 있는 6일 오후 잠실구장에서 팬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추후 1면만 따로 A3 사이즈 액자에 담은 ‘굿즈’도 고민 중이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있는 팬은 언제든지 하단의 이메일로 좋은 방안을 제시해도 좋다. 아이디어 채택시 LG 우승기운이 담긴 지면 액자를 선물할 계획이다.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