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금액에서 체급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즉 빅리그 선수에 준하는 오퍼가 오면 이길 수 없다. 투수난에 빠진 메이저리그(ML)가 KBO리그 투수를 적극적으로 데려가고 있다.

시작은 에릭 페디였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이전에도 메릴 켈리, 크리스 플렉센 등이 KBO리그에서 반등을 이루며 빅리그 보장 계약을 맺었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 수 있는 KBO리그 환경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켰고 마이너리거에서 빅리거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페디는 이들보다 강렬했다. 2023시즌 NC 유니폼을 입고 30경기 180.1이닝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으로 활약했다. 탈삼진 209개로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20승과 200개 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KBO리그 투수가 됐다.

ML 유턴을 예약한 활약. 놀라운 것은 금액이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페디에게 2년 1500만 달러 오퍼를 건넸다. KBO리그 외국인 선수의 빅리그 유턴 사례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페드를 두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메츠가 경쟁했고 화이트삭스가 더 큰 금액을 베팅했다.

마냥 빅리그를 쫓지 않았던 고우석도 태평양을 건넜다. 포스팅 마감시한을 앞두고 샌디에이고와 2년 450만 달러 보장 계약을 체결했다. 2023시즌 모습만 놓고 보면 빅리그 진출 적기는 아니었다. 2019년 마무리투수를 맡은 후 가장 고전한 시즌을 보냈다. 많은 이들이 2024시즌 반등을 이루고 FA 자격으로 최고 무대에 도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우석도 당장 맹목적으로 빅리그만 응시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빅리그가 1년 먼저 고우석을 원했다.

삼성에서 4년을 뛴 데이비드 뷰캐넌 또한 빅리그 유턴이 유력하다. 빅리그 구단의 오퍼가 오면서 삼성과 협상 테이블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삼성은 지난 4일 데니 레이예스를 영입하며 뷰캐넌과 이별을 발표했다. 뷰캐넌은 4년 동안 113경기 699.2이닝 54승 28패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했다. 작년에는 평균자책점 2.54, 188.0이닝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뷰캐넌에게 첫 번째 옵션은 삼성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빅리그로부터 큰 관심을 받는다. 30대 중반 투수라 해도 개의치 않는다. 당장 마운드에 올릴 투수가 급하다. 그만큼 심각한 투수난에 시달리고 있는 빅리그다.

일단 유망주 수급이 안 된다. 팀내 상위 유망주 대다수가 야수로 도배됐다.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에 지명한 투수들의 성장 속도가 늦거나 부상에 따른 수술로 이탈한 경우가 많다. MLB.com에서 선정한 마이너리그 유망주 상위 20명 중 투수는 2명 뿐. 50위로 범위를 넓히면 9명이다.

투수 없이 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 그래서 아시아를 바라본다.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12년 3억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빅리그에서 하나의 공도 던지지 않은 투수가 최고 대우를 받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 트래킹데이터 시대라 객관적인 평가 기준도 보유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돈 싸움으로 가면 빅리그를 이길 수 없다. ML가 투수 수급에 계속 애를 먹으면 아시아를 지속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번에 계약을 체결한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 투수들이 활약하면 수요는 더 강해질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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